나의 공황장애 극복기(부작용)
가장 큰 부담이었던 미국 출장과 기자간담회를 무사히 끝내고 나니, 밀려오는 극심한 불안감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거친 폭풍우가 지나간 뒤 조용히 찾아온 고요함처럼 내 마음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뿐, 새로운 도전을 찾아 떠난 출장과 미디어 앞에 나서는 순간들을 거치면서 내게 남은 것은 오히려 더욱 늘어난 업무와 책임들이었다. 외부 사람들과의 미팅은 잦아졌고, 보스와의 식사 자리와 늦은 밤의 술 한잔까지도 업무의 연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약물치료를 통해 공황장애의 극심한 불안을 가까스로 극복하고, 회사에서도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했지만, 약물의 효과가 사라지는 순간이면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듯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퇴근 후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정리하거나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을 가지려 해도 나른한 졸음은 저항할 수 없는 파도처럼 나를 덮쳐왔다. 그로 인해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채 잠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뜻밖의 문제까지 생겨났다.
다시금 공황의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두려워 나는 약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충실히 복용했다. 하루하루 "곧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견뎌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주 입던 옷들이 몸에 점점 더 맞지 않기 시작했다. 불안을 달래기 위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음식을 섭취했고, 그것을 바로 수면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몸은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그렇게 나는 한 치수 더 큰 옷을 사야 했고, 몸의 변화에 대한 걱정은 뒤로 미뤄둔 채 공황장애 치료가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의사조차 내 체중 증가를 조심스럽게 언급하며 부부관계와 일상생활의 균형을 물었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 관계마저 소홀해져 있었는데, 의사는 스트레스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다시 관계의 회복을 권유했고, 동시에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약을 복용한 후 곧바로 잠드는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운동은 차차 나중의 일로 미루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조차, 나는 몸과 마음의 피로를 먹고 자고 쉬는 것으로만 달랬다. 뜨거운 햇살 아래 차가운 맥주 한잔이 주는 행복이 잠시 위안을 주었지만, 그런 순간들은 다시 내 몸의 무게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장난스럽게 "아빠 배에 수박이 들어있다"며 웃었지만, 딸이 보여준 사진 속 나의 모습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쓰디쓴 현실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마주한 체중계는 98KG이라는 충격적인 숫자를 내게 던졌다. 이제 겨우 2KG만 더 늘어나면 세 자릿수를 찍게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공황장애의 치료를 위해 먹던 약을 점차 줄이기로 결심했고, 의사와의 상담 후 매달 조금씩 용량을 줄여 나갔다. 약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작은 신체적 불편함도 있었지만, 천천히 인내하며 반 알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견딘 끝에 1년 만에 드디어 공황장애 치료를 마쳤다. 체중은 여전히 많이 늘어난 상태였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품었다. 마지막 진료에서 의사가 말한 "불안해지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습니다"라는 따뜻한 위로가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공황장애라는 병은 완치가 아닌 휴면 상태일 뿐이라는 것을 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나는 이제 조금 더 깊고 차분하게 내 삶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