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네트증후군(Marionette Syndrome)
마리오네트증후군이란?
말 그대로 ‘꼭두각시 증후군’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지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심리를 말한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내 주변에서 “이렇게 하면 좋지 않아?”라고 말하면, 싫은데도 괜히 그 사람 눈치를 봐서 “아, 네, 알겠습니다” 하고 그대로 따라해 버리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헷갈리고, 내 삶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사람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된 것 같아 몹시 불편해진다.
나 같은 경우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생활 패턴을 가족들에게 강요(?)하고, 반대로 저녁에는 가족들 웃음소리에 잠을 설치는 그런 일상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마리오네트증후군은 그와는 조금 다른 결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나 태도에 휘둘려서, 내 선택이나 감정 표현조차 포기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한마디로 내 ‘자기주도권’을 내놓아버리는 상태랄까.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사가 “오늘 야근 좀 해야겠는데?”라고 하면, 사실상 ‘해야겠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라고 들릴 때가 있지 않나. 사정이 있어도, 또 내가 정말 하기 싫어도, 상사가 싫어할까 봐 안 된다고 말 못 하고 바로 순응해 버리는 식이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타협해야 하는 게 맞지만, 그게 습관처럼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왜 인형(마리오네트)에 비유될까?
사실 우리는 인형극을 볼 때, 인형 자체가 움직이니까 “오, 신기하다” 생각하지만, 인형이 내는 모든 행동은 그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조종자)의 손놀림에 달려 있잖나. 마리오네트증후군도 이와 똑같은 심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인생을 대신 움직이는 느낌. 그리고 그걸 내가 분명 불편하고 싫다고 느끼면서도 “거부하면 미움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한편, 나도 40대에 들어서면서 체력도 떨어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지다 보니 ‘누군가 내 인생을 대신 책임져 주면 좋겠다’는 무의식적인 바람이 생겼었다. 이럴 때 마리오네트증후군이 더 쉽게 나타난다고 한다. 책임감도 덜어지고, 심지어 단기적으로는 마음이 편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지시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주도권을 잃게 되고, 스스로 만족감도 점점 낮아진다는 것이다.
마리오네트증후군이 의심될 때 나타나는 징후
- “아, 네... 괜찮아요”라는 말이 입에 달고 산다.
정작 본인은 하나도 안 괜찮은데 “괜찮아요”만 반복하게 된다. - ‘나중에 후회’가 잦다.
내가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는데도, 이미 다른 사람 의견에 끌려가 버린 후 “아, 내가 왜 그랬지?”라고 한숨을 쉰다. - 정말 간단한 선택조차 타인의 의견을 기다린다.
메뉴 주문부터 옷 고르는 것까지, 매번 “어떤 게 낫겠어?”라며 누군가의 답을 바라본다. - 내 의견을 말하려다 갑자기 취소하거나, 바꿔버린다.
“난 이게 좋은데…” 하다가도 옆에서 다른 의견이 나오면 곧장 “아, 너 말이 맞네. 나도 그걸로 할래”로 바뀐다.
물론 이런 징후가 있다고 해서 다 마리오네트증후군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패턴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점점 내가 주체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사라진다면 의심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내가 깨닫게 된 것
나는 원래 아침형 인간으로서 “내 시간을 내 방식대로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40대를 지나면서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다 보니, 자꾸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내 의견을 꺼내는 대신 “뭐,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라는 말만 반복하게 됐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몰랐는데, 마리오네트증후군이라는 개념을 접하고 나니 “혹시 나도 그렇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
- 내가 원하는 것과 타인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기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할지, 저녁 모임에 참석할지 등을 결정할 때 “이건 진짜 내가 원해서 하는 건가? 아니면 누군가가 시켜서 혹은 기대해서 하는 건가?”를 계속 점검하려고 한다. - ‘싫어’라고 말하는 연습하기
가볍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상당히 큰 도전이다. 예전에는 “싫어요”라는 말 한마디 못 해서 손해본 적이 많다. 이제는 건강한 거절도 배워야 할 때다. - 전문가 상담도 고려
내가 잠 못 드는 불면의 밤에 시달렸듯이, 마리오네트증후군도 심해지면 정신적 압박이 커질 수 있다. 필요하다면 상담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마리오네트증후군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한다’는 느낌을 주고, 동시에 ‘내가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결론적으로는 ‘나’라는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적절한 도움을 받으며, 내 삶의 무대 위에서 누가 인형을 들고 조종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걸어 나가는 주체’가 되도록 연습하면 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혹시 “어라, 나도 그런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작은 일부터라도 내가 결정해보는 습관을 들여보면 어떨까. 선택의 범위가 커질수록 내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고, 그렇게 조금씩 인형끈을 잘라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