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게이트웨이(창작 웹소설)

사일런트 게이트웨이 제 8장

3시 모모(3PM Momo) 2025. 2. 16. 09:55

제8장. D-7

 

짙은 구름이 깔린 제주도의 하늘 아래, 시간 여행을 위한 마지막 준비가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민은 지난 일주일 동안 ‘타임워프 D-Day’를 앞두고, 과거로 옮겨갈 물품과 인력(혹은 로봇)을 꼼꼼히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계획이었기에,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고 있었다.


하민은 AI 타노스와 함께 가장 먼저 “정확히 어느 세기로 갈 것인가”에 대한 난제를 풀어야 했다. 이미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시공간 전이는 ‘장소 이동’은 불가능하고 시간 이동으로 인해 반경 오차 1KM 이내의 오차가 존재하며 정확하게 타임워프는 시공간 전이시 시간의 뒤틀림 현상으로 인해 대략 100년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어서 세기단위는 가늠할 수 있으나 정확하게 원하는 특정 시기로 갈 수는 없었다. 즉, 아무리 고대 로마나 초원 위의 유럽으로 가고 싶어도, 현 지점 제주도에서만 과거로 갈 수 있고 삼국시대,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특정 왕조가 지배했던 시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13세기 고려시대가 적절해 보이는데…?”

하민은 트럭 내부 모니터에 떠 있는 연도별 사건 일람표를 보며 고민을 이어갔다.  

 

과거로 돌아가 제도를 새롭게 만들고 그 발전된 산업으로 전세계를 주도하려면 조선시대는 전세계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고 국가적 체제도 잘 마련되고 있을 무렵이다. 또한 조선은 성리학 기반의 고리타분한 중앙집권 국가 체제가 너무 공고하다. 신라시대는 너무 멀고 그나마 고려시대는 몽골제국의 영향으로 전세계가 무역 영향권에 들어가고 아메리카 대륙은 현시대의 최강국인 미국이 없다.

 

하민은 타임워프 시기를 결정하고 타노스에게 물어봤다.

"주인님이 생각하시는 상황을 고려해 봤을때 13세기가 가장 적합할 것 같습니다."

 

하민은 타임워프를 한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노트북과 스마트폰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이클 박사에게 들었던 100제곱미터에 하민의 트럭(소형 포터블 원자로, AI 옵티머스 로봇 12대, 무기, 드론, 3D프린터 같은 하드웨어와 예비 부품이 잔뜩 든)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어서 든든했다. 하민은 최근 몇 년간 AI와 옵티머스 로봇과 함께 생활해 와서 그것들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의 경쟁력으로 살아나간다는 것이 내심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민은 트럭과 연결할 1톤 크기의 케리어를 구하고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작물씨앗도 챙겼다. 고려시대는 지금과 같이 풍족한 곡물이 보급되지 않았던 척박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작물 씨앗인 옥수수, 감자, 밀, 쌀 등 기후 적응력과 품종이 개량된 뛰어난 곡물과 고추, 토마토, 콩 등 13세기 고려에는 없었을 법한 작물들 그리고 약초 씨앗 일부까지 챙겼다. 이 씨앗들은 모두 밀봉 처리되어 장기간 보관이 가능했다. 동시에 그는 초기 정착 과정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식량도 충분히 챙겨야 했다. 거기엔 바쁜 현대인의 비상식품으로 알려진 에너지바, 사탕, 그리고 캔으로 포장된 각종 식량이 포함됐다. 그는 처음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사람 처럼 이것저것 분주하게 준비하면서 두려움 보다는 설레임이 더 컷다.

 

하민이 보유 중인 옵티머스 로봇이 총 12대였다. 이 중 두대는 제주도에서 아직 운영중인 로봇 스킨샵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P30형 옵티머스 로봇 2대의 스킨 작업을 부탁 드립니다."

두명의 여성이 근무하고 있는 로봇 스킨샵의 디자이너로 보이는 여성이 시니컬하게 하민을 위아래로 보며 말했다.

"P30형은 최신기종이네요 이 전쟁통에 옵티머스들에게 스킨을 입히신다구요? 이해는 되지 않지만 두고 가세요 2주일 정도 걸립니다."

여성의 태도는 시니컬 했지만 그녀의 눈매와 전시된 옵티머스들을 보면 매우 솜씨가 좋은 사람으로 자기 프라이드로 가게를 운영하는 것 처럼 보였다.  

"혹시 최대한 땡긴다면 3일 안에 가능할까요? 대신 작업비는 2배로 드리겠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전쟁관련 불안한 뉴스로 일이 손에 안 잡히는데 야근까지 하면서 작업을 할 수는 없자나요? 다른데 가보세요"

"그럼 저기 전시된 남,녀 옵티머스 모델 스킨 P30형의 모형이죠? 저걸 그대로 제작 가격 두배의 가격으로 사겠습니다."

"손님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저건 제가 전시용으로 특별히 제작한 모델로 팔지 않지만 더이상 옵티머스 스킨샵을 찾는 사람도 없으니 그렇게 하시죠 요금은 조금전 말씀하신 2배구요 선불입니다. 맡기실 옵티머스를 매장안으로 이동시키고 전원을 꺼주세요"

하민은 '바가지'라는 말이 튀어 나올뻔 했지만 빨리 받는 것이 목적이어서 수긍하고 디자이너에게 비용을 지급했다.

 

3일후 하민은 남녀 한쌍의 옵티머스를 받았다. 받자마자 전원을 켜고 나니 그들은 정말 인간과 다름이 없었다. 나머지 10대의 옵티머스는 기존에 전투 및 작업용 모듈을 장착한 상태 그대로 화물칸에 실어 두었다.

사람과 흡사하게 꾸민 2대에 하민은 각각 이름을 붙였다.

남성형 로봇: 형준(30대 중반 외모)

여성형 로봇: 미지(20대 후반 외모)

나머지 10대는 장갑형 외부 스켈레톤과 금속 골격이 그대로 노출된 디자인이었다. 이들은 일반적인 마네킹 이상의 외형을 갖추진 않았지만, 대신 막강한 작업 능력과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혹시 몰라 그는 머리에서 발목까지 오는 판초우위 10개를 나머지 옵티머스의 외피로 준비했다.

 

D-Day를 하루 앞둔 날 밤, 하민은 제주도 외곽의 한 창고 겸 베이스캠프에서 마지막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트럭 바깥에는 해풍이 거칠게 불어닥쳤고, 곳곳에 폐허처럼 무너진 시설물들이 섬뜩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약간의 적막이 맴도는 창고 안에서, 하민은 짐가방에 에너지바를 차곡차곡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인류를 구해낸 영웅이 되는 것…? 아니면 그냥 이 파괴된 미래를 피하고 싶을 뿐인 걸까?”

어느새 그의 가슴속에는 선명한 야망이 일렁였다. 3차 대전과 환경파괴가 초래한 암울한 미래를 보면서, 과거에 가서 ‘더 나은 세상’을 구축하겠다는 다짐을 해왔지만, 막상 시간이 다가오자 설레임과 함께 또 다른 걱정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형준, 미지. 이동 배터리는 문제 없지?”
창고 안쪽에서, 하민은 인간형 로봇들의 가슴부분을 열어 배터리 상태와 각종 모듈을 점검했다. 

"네,주인님.현재충전율98, 예비 배터리 두 팩도 완충 상태입니다."(형준)
"AI메인프로세서는‘타노스’와동기화완료되었습니다."(미지)

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잠재적 갈등 상황을 대비해 기본 무장도 갖춰두렴. 어깨 밑쪽에 장착해둔 소형 전기충격기와 미니 드론 조종 모듈도 이상 없지?”

"네,정상동작 확인완료.필요시 바로 대응가능." (형준)
"현재 시스템 오류 확률 1% 미만입니다." (미지)

인간처럼 보이는 이 두 로봇 이외에도, 창고 한편과 트럭 화물칸에는 나머지 10대 옵티머스가 나란히 서 있었다. 금속 골격이 그대로 노출된 이 로봇들은, 필요하다면 차갑고 기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며 13세기 전장을 순식간에 휩쓸 수도 있었다.

 

자정 무렵, 창고 밖의 어둠은 한층 깊어졌다. 하민은 마지막으로 창고 바깥에 나가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눈앞에는 우직하게 서 있는 트럭의 실루엣이 어스름 속에 잠겨 있었다. 

“내가 진짜로 꿈꾸는 건… 결국 내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게 아닐까?”
하민은 가슴속을 뒤흔드는 야심과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3차 대전으로 망가진 미래를 구하겠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우면서도, 은근히 스스로가 새로운 제국의 건설자가 되고 싶어하는 충동이 시작 되었다.

 

새벽 3시가 넘어가자 하민은 간이 침대에 몸을 뉘였다. 눈을 감았고 이내 잠들어서 꿈을 꿨다. 꿈 속은 여전히 몽골 기마군의 함성, 고려 병사들의 피비린내, 그리고 공중을 가르는 불가사의한 비행체의 소음으로 가득했다. 황토빛 대지를 달리는 몽골 병사들이 보였고 말 위에서 창을 휘두르며 돌진하는 그들 위로, 트럭인지 비행체인지 모를 현대 병기가 공격을 퍼붓자, 몽골군이 혼비백산 무너져내렸다. 하민은 승리에 도취된 듯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장면이 바뀌어, 2027년(또는 그 이후) 지옥처럼 파괴된 미래가 겹쳐 보였다. 폐허 속에서 방독면을 쓴 사람들이 절규했고, 하민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사로잡혀 공포감에 몸부림쳤다.

 

짧지만 깊은 악몽에서 깨어나 보니, 시계는 어느덧 아침 7시를 향해 있었다. 창고 밖에서는 트럭 엔진의 예열음이 희미하게 들렸다.
오늘은 곧 D-Day, 이 과감한 타임워프 실험이 실행되는 날이다.

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씻고, 거울 앞에 섰다. 초췌한 얼굴이 한눈에 보였지만, 그 눈빛만은 묘하게 빛났다.
“준비는 끝났어. 해낼 수 있어.”

그는 하룻밤 전까지 뒤섞여 있던 욕망과 고민을 가라앉히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3차 대전과 환경파괴로 끝장난 미래를 바꾸겠다”는 대의명분이든, “내 손으로 제국을 세워 보겠다”는 야심이든, 이제 그 모든 것은 한길로 합쳐졌다.

 

하민은 출발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바깥 공기는 여전히 서늘했고, 하늘에는 어둑한 구름이 깔려 있었다. 형준과 미지(인간형 로봇 두 대)는 이미 작업모드로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고, 나머지 10대 옵티머스는 화물칸 내부에 묵직하게 대기 중이었다. 모두가 하민의 한마디 명령에 출동 가능한 상태였다.

“형준, 미지. 탑승.”
짧은 명령에, 두 로봇은 조용히 트럭 캐빈 내부로 올라탔다. 그리고 화물칸의 철제 문 뒤편에는 10대 로봇들이 붉은 LED 눈을 빛내며 잠든 듯 대기하고 있었다.

하민은 운전석에 오르며,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낮고 묵직하게 울렸고, 어스름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이 트럭과 케리어는 사일런트 게이트웨이 시설에서 준비해둔 거대한 컨테이너에 실릴 것이다. 그 안에 탑재된 모든 자원, 로봇, 그리고 ‘미래를 바꿀 열망’이 시공간을 돌파할 날이 지금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멈출 수 없어. 과거에 도착하면, 그것이 설령 전쟁터가 됐든 새로운 왕국이 됐든, 내 뜻대로 만들어보겠어.”

하민은 액셀을 밟으며, 곧 펼쳐질 격동의 역사를 상상했다.
과연 이 위험천만한 실험이 성공해 고려시대에 안착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성공한다면, 그곳에서 그가 펼칠 새로운 무대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폐허가 된 2030년의 제주도를 뒤로하고,
하민은 머잖아 고려시대의 제주도에 착지할 운명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2/23일  9화 공개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