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지난 주말, 짧은 일본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어 있었다.
텐가 사건과 더불어, 일본에서 잘나간다는 상사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인 탓이었다.
한국에서는 최고의 직업으로 의사를 꼽지만, 일본에서는 상사맨이 인기 직종이다. 그들은 술자리에서조차 마치 치열한 전투에 나선 사무라이처럼 맹렬했고, 그 분위기에 휩쓸리느라 출장 내내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었다. 문득, 시마 과장의 캐릭터가 여전히 일본 상사맨의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친 내 몸과 마음에 진정한 위로가 되는 건 가족과의 짧은 식사 시간뿐이었다. 딸들과 마주 앉아 늘어놓는 출장 무용담은 곧 시들했고, 결국 나는 언제나처럼 넷플릭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폭싹 속았수다"가 요즘 대세라는 말에 첫 화를 틀었다. 아역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에 금세 몰입했고, 두 번째 에피소드부터는 내 이야기를 보는 듯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나는 70년대생이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금명이와 같은 세대다. 애순이는 우리 부모님 세대와 같다. 힘겹게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삶을 재건했던 세대와, 그 바탕 위에서 도시로 몰려든 베이비붐 세대의 이야기가 내 삶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이 드라마는 분명 가장 많은 한국인이 공유하는 기억과 감성을 건드리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방 안은 어느새 내 울음으로 젖어들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갑자기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엔 아직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남아 있나 보다. 아니면 진부한 듯 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감정이 "폭싹" 속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첫 두 에피소드에서는 애순이를 보며 우리 부모님 세대의 고난에 눈물이 흘렀고, 세 번째 에피소드부터는 서울로 올라와 반지하 방에서 악착같이 버티던 내 과거가 오버랩되어 더욱 마음이 저렸다. 비좁고 습한 반지하 생활, 앞날에 대한 막막한 불안, 타지에서의 외로움이 떠올라 한참을 울었다.
일요일 저녁, 결국 나는 스시와 우동을 사들고 엄마를 찾았다. 엄마를 보러 왔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무뚝뚝하게 "잘 챙겨 먹어"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집을 나왔다. 사실은 엄마가 그리워서 찾아온 것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나의 서툰 애정 표현이 애순이 세대의 무뚝뚝한 사랑과 닮았다는 생각에 또다시 눈물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딸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딸들 친구들도 드라마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감정의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한편으론 마음이 따뜻해졌다.
임상춘 작가의 글이 너무나 깊고 따뜻해, 나는 드라마를 보자마자 그녀의 전작인 『동백꽃 필 무렵』을 다시 틀었다. 다시 한번 그녀의 글에 "폭싹 속아" 울고 웃으며, 주말 밤의 짙은 감성을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