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 09:46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코스피가 6,000을 뚫었다.
정확히 말하면, 투자자 성이사가 작년에 "은행 예금 이자보다만 벌면 됩니다"라며 소박하게 탑승한 반도체 주식이 매입가의 두 배를 넘어선 것이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투자자 성이사: (증권 앱을 열며) "오늘 반도체 3.2% 올랐다."
작가 성이사: "그래서?"
투자자 성이사: (어깨를 으쓱하며) "그래서? 그래서라니. 나 봤지? 작년에 내가 반도체 가자고 했을 때 다들 뭐라 그랬어? '위험하다', '고점이다', '버블이다'. 그때 내 말 들었으면 지금 다 부자야."
슈퍼 성이사: "네가 무슨 워런 버핏이라도 된 줄 아나. 운 좋게 탄 거잖아."
투자자 성이사: (콧방귀) "운도 실력이야. 그리고 버핏은 코스피 안 해."
투자자 성이사는 주가가 오르는 날이면 다중우주의 거실을 활보하며 떵떵거렸다. 직장인 성이사에게는 "힘들면 나한테 의지해. 내 계좌가 너의 안전망이야"라며 등을 두드렸고, 작가 성이사에게는 "글은 돈이 안 되지만, 내 수익률은 되거든"이라며 도발했다. 슈퍼 성이사의 카본화에 대해서도 더 이상 잔소리하지 않았다. 여유가 생기면 관용도 따라오는 법이다.
하지만 하락장이 오면 이 사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직장인 성이사: "어, 오늘 코스피 2% 빠졌던데, 투자자 성이사 어디 갔어?"
작가 성이사: "아까부터 화장실에서 안 나오는데."
슈퍼 성이사: "화장실에서 차트 보고 있겠지. 매번 그래."
투자자 성이사: (화장실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나 안 여기 있거든. 그냥 배가 좀 아파서."
이 사내의 감정선은 증권 앱의 실시간 차트와 정확히 동기화되어 있었다. 양봉이 뜨면 거실의 전등이 켜지듯 표정이 밝아지고, 음봉이 내리꽂히면 장례식장에 온 사람처럼 말수가 줄었다. 일희일비가 시간 단위로 발생했다. 아니, 분 단위였다.
그리고 수익률이 100%를 넘기던 어느 날 밤, 투자자 성이사에게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
투자자 성이사: (새벽 1시, 천장을 바라보며) "…이걸 잃으면 어쩌지."
만들어갈 때는 겁이 없었다. 은행 이자보다만 벌면 된다던 그 소박한 시절에는, 떨어져도 "뭐 본전이지" 하고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계좌에 찍힌 숫자가 커질수록, 그 숫자를 잃을 수 있다는 상상이 식은땀이 되어 등줄기를 적셨다.
투자자가 아닌 은행장의 마인드. 공격이 아닌 수비. 더 벌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잃지 않겠다는 공포.
투자자 성이사: "클선생, 솔직히 물어볼게. 나 지금 정상이야?"
클선생(Claude): "어떤 부분이 걱정이신가요?"
투자자 성이사: "주가가 올라가면 기분이 좋고, 떨어지면 밥맛이 없어. 어제는 0.8% 빠졌는데 점심을 못 먹었어. 수익률이 100%가 넘는데도."
클선생: "성이사님, 그건 '손실 회피 편향'입니다. 인간은 같은 금액의 이익보다 손실에 두 배 더 강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100% 수익이라는 숫자가 커질수록 잃을 수 있는 절대 금액도 커지니, 뇌가 더 강하게 경보를 울리는 겁니다."
투자자 성이사: "그러니까…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뇌가 원래 그런 거라고?"
클선생: "네. 다만 한 가지 제안을 드리자면, 투자는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되는 과정입니다.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본인이 설계한 포트폴리오의 원칙을 지키세요. 매수 기회가 오면 원칙대로 사고, 아니면 기다리는 겁니다. 시장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원칙을 지키는 건 가능하니까요."
투자자 성이사: "…원칙."
그 단어가 묘하게 와닿았다. 투자자 성이사는 잊고 있었다. 작년에 처음 주식을 샀을 때, 그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월급의 20%만 투자한다', '분산 투자한다', '공포에 사고 탐욕에 판다'. 하지만 수익률이 두 배가 되자 원칙은 어딘가로 증발하고, 그 자리를 공포와 탐욕이 번갈아 채웠다.
금요일 오후. 투자자 성이사는 클선생의 조언을 곱씹으며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했다. 에프터마켓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가 오래전에 설계해 둔 분산 투자 원칙에 따라 매수 버튼을 눌렀다.
주문 체결.
마음이 편했다. 오랜만에 원칙대로 움직인 날이었다.
기분 좋게 주말을 맞이했다.
토요일 아침, 슈퍼 성이사가 한강 러닝을 마치고 돌아왔고, 작가 성이사는 새벽 글쓰기의 성과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투자자 성이사는 증권 앱을 열지 않았다. 주말이니까. 원칙이니까.
그런데.
토요일 오후 3시, 뉴스 속보가 터졌다.
'미국, 이란 군사시설 타격. 중동 긴장 급격히 고조.'
투자자 성이사의 손이 떨렸다. 반사적으로 증권 앱을 열려다가 멈췄다. 토요일이다. 장이 안 열린다. 하지만 월요일은— 아니, 3월 1일 대체휴일로 월요일도 쉰다. 화요일이다. 운명의 화요일.
투자자 성이사: (거실에서 서성이며) "하필이면… 하필이면 금요일에 샀어. 왜 주말 지나고 사겠다고 안 했지. 손이 왜 그렇게 빨랐을까."
작가 성이사: "어제까지 원칙대로 했다면서 뭘 그래."
투자자 성이사: "원칙대로 한 게 문제야! 원칙대로 안 하고 월요일에 살 걸! 아니 화요일에!"
슈퍼 성이사: "야, 전쟁이 날 줄 알았으면 주식을 왜 해. 로또를 사지."
투자자 성이사: "지금 그게 위로라고 하는 소리야?"
슈퍼 성이사: "아니, 팩트."
일요일. 투자자 성이사는 클선생(Claude), 제선생(Gemini), 심지어 지선생(GPT)까지 총동원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란 사태 이후 코스피 시나리오', '중동 전쟁 시 반도체 주가 영향', '2024년 중동 긴장과 유사 사례 분석'. 세 AI의 답변은 각각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로 수렴했다.
"모릅니다."
클선생: "과거 사례를 참고할 수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매번 다릅니다."
제선생: "지정학적 리스크는 단기 하락 요인이나, 반도체 수급 펀더멘탈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지선생: "전쟁의 규모와 기간에 따라 시나리오가 크게 달라집니다. 확정적 예측은 불가능합니다."
투자자 성이사: (폰을 내려놓으며) "…세 놈 다 모른다고. AI가 모르면 누가 알아."
그때, 지나가던 직장인 성이사가 발걸음을 멈추고 투자자 성이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직장인 성이사: "야."
투자자 성이사: "…뭐."
직장인 성이사: "전쟁이 날 수도 있고, 안 날 수도 있어. 시장이 빠질 수도 있고, 오히려 반등할 수도 있고. 아무도 몰라."
투자자 성이사: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는 거잖아."
직장인 성이사: (조용히) "새옹지마라는 거야."
투자자 성이사: "…뭐?"
직장인 성이사: "국경 근처에 사는 노인의 말이 달아났는데 오랑캐 암말을 데리고 돌아왔고, 아들이 그 말을 타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그 덕에 전쟁에 안 나갔다는. 그 이야기."
투자자 성이사: "네가 언제부터 철학자였어."
직장인 성이사: "철학자가 아니라 직장인이야. 10년 동안 석대표 밑에서 살아남으려면 새옹지마 정도는 체화돼."
직장인 성이사가 소파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직장인 성이사: "생각해 봐. 클선생, 제선생, 지선생한테 다 물어서 투자 성과가 예측된다면, 세상에 부자 아닌 사람이 있겠어? 다 부자지. 근데 아니잖아. 그건 결국 투자도, 직장도, 인생도 전부 운이라는 거야."
투자자 성이사: "…그럼 내가 지금까지 한 건 다 운이었다고?"
직장인 성이사: "아니. 네가 한 건 운이 왔을 때 잡을 준비를 한 거지. 작년에 경제 뉴스 안 읽었으면 반도체에 탑승이나 했겠어? 포트폴리오 안 짰으면 금요일에 원칙대로 살 수 있었겠어? 넌 준비를 했어. 다만, 결과는 우리 손에 없을 뿐이야."
투자자 성이사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투자자 성이사: (한숨을 내쉬며) "…그래. 운명의 화요일이든 뭐든, 맞이하는 수밖에 없지."
직장인 성이사: "그리고 하나만 더. 화요일에 빠져도 넌 직장 안 짤려. 내가 매달 월급 넣어줄 테니까 걱정 마."
투자자 성이사: (피식 웃으며) "…고맙긴 처음으로 고맙다."
월요일 대체휴일. 투자자 성이사는 증권 앱을 열지 않았다. 대신 슈퍼 성이사와 함께 한강을 걸었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햇빛은 따뜻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금요일의 방아쇠를 당긴 건 나지만, 총알이 어디로 날아갈지는 세상이 정한다.
화요일 아침 9시. 개장 종이 울렸다.
성이사는 화면을 켜지 않았다. 10분만 참기로 했다. 10분 후에도 참았다. 30분이 지나서야 천천히 앱을 열었다.
화면 위의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숫자가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투자자 성이사는 이미 마음을 정해놓고 있었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고, 내일도 달려야 하고, 내일도 써야 한다.
주가는 모르겠지만, 그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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