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 11:56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매일 새벽 달리기를 해온 슈퍼 성이사는 성이사의 다중우주에서 유일한 안정제였다. 투자자 성이사가 차트 앞에서 불안에 떨 때, 직장인 성이사가 석대표의 레이저에 쫄아 있을 때, 작가 성이사가 빈 화면 앞에서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 슈퍼 성이사는 묵묵히 달렸다. 달리면서 생기는 하루의 성취감은 특히 직장인 성이사가 직업 전선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봄이 왔다.
슈퍼 성이사에게 봄은 단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 라이딩 시즌의 개막.
겨우내 봉인해두었던 로드바이크를 꺼낸다. 카본 프레임에 울테그라 Di2 전동 구동계. 이 자전거의 가격은 투자자 성이사가 알면 기절할 수준이지만, 이미 전쟁은 끝났다. 작년 여름, '카본화 전쟁'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전례가 있기에 투자자 성이사도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다.
전날 밤부터 의식이 시작된다.
타이어 공기압 체크. 110psi. 전동 변속기 충전 확인. 초록 불. 체인에 윤활유를 한 방울씩, 마디마디에 스며들도록 바른다. 에너지젤 두 개와 크램픽스(근육경련 방지용) 한 봉지를 저지 뒷주머니에 넣는다. 초기화 시즌의 첫 라이딩은 항상 위험하다. 겨우내 쓰지 않던 허벅지 근육과 둔근이 라이더의 의지와 관계없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침 7시. 슈퍼 성이사가 장비를 갖추고 현관에 섰다.
헬멧. 고글. 타이트한 빕숏에 저지, 그 위에 바람막이 조끼. 클릿슈즈의 딸깍거리는 소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본다.
슈퍼 성이사: (거울 앞에서, 진지하게) "…아이언맨이야 이거."
투자자 성이사: (소파에서 폰을 보며) "아이언맨은 날아다니지 자전거 안 타."
슈퍼 성이사: "닥쳐. 오늘 나는 어벤저스다."
작가 성이사: (메모장을 펴며) "어벤저스가 카본 울테그라를 타고 한강을 달린다. …좋은데?"
슈퍼 성이사가 카본 울테그라의 안장에 올랐다. 클릿이 페달에 찰칵 결합되는 순간, 몸과 기계가 하나가 된다. 첫 페달링. 울테그라의 전동 변속기가 거의 무음으로 기어를 바꾼다.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한강 자전거 도로. 페달을 구르지 않을 때 들리는 라쳇 소리가 짤짤짤짤 울린다. 이 소리는 여름의 매미처럼, 라이딩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효과음이다. 그리고 이 소리에는 또 하나의 기능이 있다.
앞에서 느리게 가는 자전거에게 보내는 경고음.
짤짤짤짤—
슈퍼 성이사: "지나가겠습니다!"
한강 위를 달리는 사람들.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느린 자전거, 빠른 자전거. 저마다의 속도로 세상을 산다. 슈퍼 성이사는 그들 사이를 쏜살처럼 빠져나간다. 반포대교를 지나고, 동작대교의 아치가 눈앞으로 다가왔다가 뒤로 밀려간다. 대교 위를 지나는 지하철이 철커덩 소리를 내며 한강을 건넌다.
인생은 저런 수많은 풍경과 수많은 사람의 각자의 시간이 합쳐진 합이다. 나는 그 속을 유유히 가르며, 시간을 따라잡는 존재다.
평속 30km/h. 심박수 155. 완벽하다.
20km 지점을 지났다. 아직 여유 있다. 30km 지점. 바람이 좋다. 40km 지점—
바람이 변했다.
한강의 똥바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강 특유의 역풍. 봄에는 특히 변덕스러운 이 바람이 갑자기 정면에서 거대한 벽이 되어 슈퍼 성이사를 가로막았다.
슈퍼 성이사: (이를 악물며) "…바람 따위에."
문제는 바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슈퍼 성이사가 자신의 상태를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초기화 상태. 겨우내 러닝으로 심폐 능력은 유지했지만, 자전거에 쓰는 근육은 전혀 다르다. 허벅지 안쪽, 둔근, 종아리 뒤쪽. 이 근육들은 석 달 동안 동면 중이었다. 그런데 슈퍼 성이사는 초기화를 무시하고 평속을 줄이지 않았다. 호랑이의 자존심이 고양이의 현실을 덮어버린 것이다.
45km 지점. 허벅지가 타기 시작했다.
슈퍼 성이사: (속으로) "괜찮아. 그냥 좀 뻐근한 거야."
50km 지점. 근육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슈퍼 성이사: "크램픽스…"
주머니에서 크램픽스 한 봉지를 꺼내 입에 털어넣었다. 신맛이 혀를 감쌌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바람의 벽을 뚫고 나아간다.
55km 지점.
왼쪽 허벅지가 잠겼다.
경련. 근육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리는 그 순간의 고통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슈퍼 성이사는 급히 자전거를 세웠다. 클릿슈즈를 페달에서 빼고 땅을 디뎠다.
슈퍼 성이사: "…씨."
클릿슈즈로 걷는 것은 하이힐을 신고 빙판 위를 걷는 것과 비슷하다. 딸깍딸깍, 또각또각.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자전거를 끌고 걷는 슈퍼 성이사의 모습에서 호랑이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슈퍼 성이사: (자전거를 끌며, 쩔뚝쩔뚝)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걸으면…"
하지만 왼쪽이 풀리자 오른쪽이 잠겼다. 양쪽 허벅지가 교대로 배신하기 시작했다.
슈퍼 성이사는 대교 위를 바라봤다. 저기 지하철역이 보인다. 자전거를 접어서 지하철을 타면…
안 돼. 카본 울테그라는 안 접힌다.
하지만 다리는 이미 항복 선언을 한 상태였다. 슈퍼 성이사는 받아들여야 했다.
슈퍼 성이사: (한숨) "…오늘은 철수다."
50km. 목표의 70km에서 20km를 남기고 전선에서 이탈. 어벤저스로 출발한 라이딩이 부상병 후송으로 끝났다. 초기화는 역시 무서웠다.
슈퍼 성이사: (집에 돌아와서) "바람 때문이야. 오늘 똥바람이 장난이 아니었어."
투자자 성이사: "주가 떨어지면 '시장 탓', 라이딩 실패하면 '바람 탓'. 너랑 나랑 똑같네."
슈퍼 성이사: "…닥쳐."
일주일 후. 다시 토요일.
슈퍼 성이사는 이번에 다른 자전거를 꺼냈다. 그의 두 번째 애마. 브롬톤.
접이식 자전거. 작은 바퀴. 카본 울테그라와는 모든 것이 반대다. 속도도, 위엄도, 외관도. 하지만 슈퍼 성이사는 이 자전거에 특별한 이름을 붙여놓았다. 로시난테.
작가 성이사: "로시난테? 돈키호테의 말?"
슈퍼 성이사: "노새지. 늙고 여윈 노새. 하지만 돈키호테는 그 노새를 타고 세상에 도전했잖아. 카본 울테그라가 전투기라면, 브롬톤은 노새야. 하지만 노새도 목적지에 도착은 한다."
작가 성이사: "…그거 꽤 문학적인데?"
슈퍼 성이사: "작가는 네가 아니라 세르반테스야."
슈퍼 성이사는 로시난테의 안장에 올랐다. 이번에는 평속을 낮췄다. 시속 20km. 카본 울테그라로 달릴 때의 3분의 2 속도다. 호랑이의 질주가 아니라 고양이의 산책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본 울테그라를 탈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한강변에 핀 개나리의 봉우리.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노부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연인. 물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카약.
시간을 따라잡으려 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자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슈퍼 성이사: (페달을 천천히 구르며, 속으로) "아…"
한강에 나와서 달리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시간으로. 슈퍼 성이사는 카본 울테그라 위에서 그들을 추월하며 우월감을 느꼈지만, 로시난테 위에서는 그들과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겨우내 쓰지 않았던 허벅지 근육과 둔근이 천천히 깨어났다. 시간을 거스르지 않자, 근육도 배신하지 않았다. 30km, 40km, 50km. 지난주에 경련이 왔던 지점을 무사히 통과했다. 60km, 70km.
완주.
로시난테와 함께, 70km를 완주했다.
슈퍼 성이사는 한강변 벤치에 브롬톤을 세워놓고 앉았다. 땀을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카본 울테그라로 완주했을 때의 쾌감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정복이 아니라 공존. 속도가 아니라 지속의 기쁨.
슈퍼 성이사: (로시난테를 바라보며) "…고마워, 이 노새야."
가끔은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다. 시간을 따라잡으려 하지 말고, 시간 속에서 걸어야 한다. 호랑이가 되지 못하는 날에는, 돈키호테가 되면 된다.
슈퍼 성이사는 나머지 세 명의 성이사를 떠올렸다.
투자자 성이사. 하락장의 바람 앞에서 속도를 줄이는 법을 배워라. 직장인 성이사. AI라는 역풍 앞에서 페달을 바꿔 밟는 법을 익혀라. 작가 성이사. 빈 화면의 바람 앞에서 멈추지 말고 천천히 구르면 된다.
우리 모두, 가끔은 로시난테가 필요하다.
바람이 불었다. 이번에는 순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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