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1. 22:32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토요일 오전. 작가 성이사는 넷플릭스를 켰다.
오늘 볼 작품은 '다시 서울에서'라는 인도 영화였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과 인도를 오가는 이야기. 작가 성이사는 인도 영화라면 중간에 갑자기 백 명이 나와서 춤을 춰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강력 추천한 작품이라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작가 성이사는 멍하니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고 있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 그것은 작가 성이사가 매일 출퇴근하며 스쳐 지나가는 도시와 같은 곳이면서,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작가 성이사에게 서울은 석대표가 있는 곳이고, 출퇴근 지하철이 있는 곳이고, 한강 러닝 코스가 있는 곳이고, 맥주를 마시는 집이 있는 곳이다. 일상이고, 습관이고, 반복이다.
하지만 영화 속 인도인 여주인공에게 서울은 이상적인 도시였다. 깨끗한 거리, 빠른 인터넷, 24시간 편의점, K-컨텐츠의 발원지. 인도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서울에서는 공기처럼 당연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여주인공이 한국 남자 주인공에게 한 말이었다.
"너는 왜 컨텐츠를 꼭 한국어로 만들려고 해? 자막을 달면 전세계에서 볼 수 있어."
작가 성이사는 그 대사에서 멈칫했다.
그렇구나.
한국어로 쓴 글은 한국인만 읽는다. 하지만 자막이 달리는 순간, 그것은 세계의 컨텐츠가 된다. 한국인에게 당연한 이야기가, 외국인에게는 낯설고 신선한 이야기가 된다. 서울의 일상이 인도 여성에게 꿈의 재료가 되듯, 성이사의 다중우주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공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꿈을 꾸는 사람의 컨텐츠. 그것의 위대함.
작가 성이사: (엔딩 크레딧을 보며, 혼잣말) "나는…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의 가치를 모르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서울이라는 도시. 한국어로 쓸 수 있는 이야기. K-컨텐츠라는 바다. 넷플릭스라는 창. 이 모든 것이 성이사의 손 안에 있었다. 매일 불평하고, 매일 지치고, 매일 "나이가 들어서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을까.
마침 오늘, 방탄소년단의 광화문 공연이 시작된다. 뉴스에서 봤다. 세계 각국에서 온 팬들이 서울을 채우고 있다. 방탄소년단을 보기 위해, 아니, 방탄소년단이 보여준 꿈을 느끼기 위해 서울을 찾은 사람들. 그들에게 서울은 성지다. 작가 성이사가 매일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는 그 도시가.
투자자 성이사: (소파에서) "방탄소년단 공연 티켓 가격이 얼마인지 알아? 암표는 그 몇 배야. 그걸 전 세계에서 사러 온다니까. 한류 컨텐츠 ETF 하나 사야 하나."
슈퍼 성이사: (마사지건을 들고) "광화문에 사람 많으면 내일 러닝 코스 바꿔야겠다."
직장인 성이사: "석대표가 K-컨텐츠 파트너십 이야기한 적 있는데, 이번 기회에 보고서 하나 올려볼까."
세 페르소나는 각자의 방식으로 방탄소년단 공연을 해석했다. 투자자는 ETF로, 슈퍼 러너는 러닝 코스로, 직장인은 보고서로.
하지만 작가 성이사는 달랐다.
작가 성이사: "오늘 밤, 다 같이 넷플릭스 생중계 보면서 한잔하자."
슈퍼 성이사: "또 술이야? 지난번에 다섯 캔 마시고 숙취 러닝한 거 벌써 잊었어?"
직장인 성이사: "집에서 안 마시기로 했잖아."
투자자 성이사: "맥주 비용은?"
작가 성이사: "오늘만. 오늘은 이유가 있어."
셋: "무슨 이유?"
작가 성이사: "방탄소년단 때문도 있고, '다시 서울에서' 때문도 있고. 근데 진짜 이유는…"
작가 성이사는 창밖을 바라봤다. 봄이었다. 나무에 초록이 올라오고 있었고, 바람이 따뜻했고, 어딘가에서 벚꽃 냄새도 나는것 같았다. 물론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봄이라는 계절 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작가 성이사: "…우리가 가진 것들을 축하하고 싶어서."
직장인 성이사: "가진 것?"
작가 성이사: "생각해 봐. 우리는 서울에 살고, 봄이 오고 있고, 직장이 있고, 투자할 돈이 있고, 달릴 수 있는 다리가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손이 있어. 왼쪽 무릎이 좀 아프긴 하지만."
슈퍼 성이사: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야."
작가 성이사: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이 오늘 밤 공연을 하고, 그걸 넷플릭스로 볼 수 있고, 맥주를 마실 냉장고가 있어. 이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투자자 성이사: "…오늘따라 문학적이네."
직장인 성이사: "작가 성이사가 원래 이럴 때 무서워. 감성 모드 들어가면 돈이 나가거든."
작가 성이사: "맥주 몇 캔이잖아."
슈퍼 성이사: "몇 캔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마시면 다섯 캔이잖아."
작가 성이사: "오늘은 세 캔만. 약속."
슈퍼 성이사: "지난번에도 세 캔이라더니."
작가 성이사: "그때는 봄이 아니었잖아."
슈퍼 성이사: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작가 성이사: "봄에는 한 캔이 덜 취해. 과학적으로."
투자자 성이사: "그런 과학은 없어."
작가 성이사: "있어. 내가 방금 만들었어."
토요일 밤. 넷플릭스 생중계.
방탄소년단의 광화문 공연이 시작되었다. 화면 속 광화문 광장은 인파로 가득했다. 세계 각국의 깃발이 보였다.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아랍어로 된 플래카드가 휘날렸다. 서울의 야경이 배경으로 펼쳐졌다. 경복궁의 지붕 너머로 빌딩의 불빛이 반짝였다.
작가 성이사는 맥주 캔을 따며 화면을 바라봤다.
이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호텔을 잡고, 티켓을 구하고, 서울까지 왔다. 성이사의 다중우주가 매일 출퇴근하는 그 서울까지.
내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꿈의 재료였다.
매번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서 어렵다고 생각했다. 글이 안 써지면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서울에서'의 인도인 여주인공은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꿈을 향해 달려왔다. 그녀에게 성이사가 가진 것의 절반만 있었어도 벌써 세 편의 책을 더 썼을 것이다.
작가 성이사: (두 번째 캔을 따며) "…야."
직장인 성이사: "응?"
작가 성이사: "나 좀 더 열심히 써야겠다."
직장인 성이사: "갑자기?"
작가 성이사: "인도에서 꿈꾸면서 서울까지 오는 사람이 있는데,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살면서 글이 안 써진다고 투덜대는 건… 좀 부끄럽잖아."
슈퍼 성이사: "맥주 마시면서 결심하는 건 다 거짓말이래."
작가 성이사: "아니야. 맥주 마시면서 하는 결심이 가장 진심이야."
투자자 성이사: "그것도 과학 아닌데."
작가 성이사: "맞아. 이것도 내가 방금 만들었어."
세 번째 캔을 따려다가 멈췄다. 약속은 세 캔이었다. 슈퍼 성이사가 눈을 빛내며 감시하고 있었다.
작가 성이사: (세 번째 캔을 내려놓으며) "…오늘은 두 캔으로 할게."
슈퍼 성이사: "뭐?"
직장인 성이사: "…너 진짜 감동받은 거구나."
작가 성이사: "한 캔은 아꼈어. 다음에 쓸 글이 잘 써졌을 때 마실 거야."
투자자 성이사: "…성과 보상 체계를 만드는 거네. 나쁘지 않은데."
화면 속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광화문 광장의 함성이 스피커를 채웠다. 서울의 밤이 빛나고 있었다.
작가 성이사는 빈 맥주 캔 두 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과, 가진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 나는 오늘까지 전자였고, 내일부터 후자가 되고 싶다.
봄은 와 있었다. 처음부터.
다만 내가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다.
넷플릭스의 공연이 끝났다. 앙코르가 시작되었다. 작가 성이사는 수첩을 꺼내 한 줄을 적었다.
서울에서 당연한 것들이 꿈이 되는 곳이 있다. 나는 누군가의 꿈 위에 서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봄의 시작이다.
수첩을 덮었다. 세 번째 맥주 캔은 냉장고에서 다음 글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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