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8. 22:25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일본 출장에서 돌아온 주말.
작가 성이사의 머릿속에는 아직 도쿄가 남아 있었다. 크리미한 생맥주의 거품. 깔끔하게 목을 타고 내려가던 사케. 긴자의 하이볼바에서 바텐더가 깎아낸 얼음의 투명한 질감. 그리고 고쿄 외곽에서 바람에 흩날리던 벚꽃.
서울에도 봄은 왔다. 하지만 같은 봄이 아니었다. 일본처럼 하늘이 파랗지 않았다. 석유난 때문에 화력발전소 가동률이 늘어난 탓인지, 서울의 하늘은 미세먼지가 엷은 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벚꽃도 아직이었다. 개화 예보는 다음 주. 일본보다 일주일 늦게 피는 서울의 벚꽃.
벚꽃이 피면 벚꽃나무 아래에서 맥주 한 잔을 하며 봄을 느끼겠다.
작가 성이사는 이번 주말의 시간이 아쉬웠다. 벚꽃이 아직 피지 않은 봄은, 마치 포장지만 있고 선물이 없는 상자 같았다.
그래도 따뜻한 봄날은 봄날의 노래를 불렀다. 바람이 부드러워졌고, 코트 없이 걸을 수 있었고, 공기에 수분이 돌아왔다. 봄은 이미 와 있었다. 다만 눈에 보이는 증거(벚꽃)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뿐.
작가 성이사는 베란다에 서서 아파트 단지 너머의 풍경을 바라봤다. 한로로의 음악이 이어폰에서 흘렀다.
봄은 낭만의 계절이다.
그리고 문득, 오래된 기억이 올라왔다.
예전에, 중년의 아버지를 보면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무슨 재미로 살까?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잠을 잤다. 평일에는 피곤한 얼굴로 출근하고, 더 피곤한 얼굴로 돌아왔다. 취미가 없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없어 보였다. 술을 마시지도, 운동을 하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일하고, 쉬고, 다시 일했다.
어린 성이사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게으를까? 감성이 없는 사람 같다. 돈만 벌어오는 사람.
아버지에게 낭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소파에서 잠든 아버지의 얼굴에서 설렘이나 꿈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저 피곤한 중년 남자. 세상의 무게에 눌린 사람. 아무 재미 없이 사는 사람.
그런데 이제, 작가 성이사가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버지도 낭만이 있었을 것이다.
봄이 오면 가슴이 설레었을 것이다. 벚꽃이 피면 옛생각이 났을 것이다. 젊었을 때의 기억, 아내와 처음 걸었던 길, 아이들이 태어나던 봄날. 감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표현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이다. 여행도 가고 싶었을 것이고, 취미도 갖고 싶었을 것이고, 봄날에 산책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유가 없었다. 취미가 없었다. 쉬는 것이 다음 주에 닥칠 일들에 대한 유일한 대비였고, 소파가 가장 편한 피난처였다.
가족이 유일한 피난처였을 텐데.
그런데 나는, 철이 들고 나서, 그에게 따뜻하게 한마디 한 적이 있었나?
'아버지, 봄날에 나들이라도 갈까요?'
한 번도. 단 한 번도.
작가 성이사: (베란다 난간을 잡으며, 조용히) "……."
그리고 이제, 성이사 자신이 그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휴일의 봄날에도 자기 고민에 빠져서, 부모에게 봄날의 낭만을 선물하지 못하는 아들. 하루에 해야 할 루틴 — 달리기, 글쓰기, 투자 정보 업데이트 — 에 집중할 뿐, "어머니, 벚꽃 보러 갈까요?"라는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 아들.
나는 아버지의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다.
봄은 왔는데, 봄을 나눌 사람에게 봄을 건네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작가 성이사는 낮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토요일 오후의 침대. 커튼 사이로 봄볕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눈을 감으면 도쿄의 벚꽃이 눈꺼풀 뒤에서 흩날렸다. 잠이 올 것 같았다. 이대로 30분만 자면…
둘째딸: "아빠!"
눈을 떴다.
둘째딸: (방문을 열고 서서) "아빠, 낮에 왜 침대에 있어?"
작가 성이사: (반쯤 감긴 눈으로) "…좀 쉬려고."
둘째딸: "아빠, 일어나. 내 방 봄맞이 대 정리를 하려고 해."
작가 성이사: (일어나며) "…봄맞이 정리?"
둘째딸: "응. 내 방에 붙어 있는 펜트리에 아빠 물건 다 치워."
작가 성이사: "내 물건?"
둘째딸: "응. 겨울 옷이랑 이상한 상자들. 다 치워야 내 방이 넓어져."
작가 성이사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딸의 호출에 설레었다. 딸이 자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건 치우는 일이라도, 딸이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은 소중하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기시감이 밀려왔다.
이거… 내가 아버지한테 했던 거 아닌가.
주말에 소파에서 쉬고 있는 아버지에게, "아빠, 내 방 좀 치워줘", "아빠, 이거 좀 옮겨줘", "아빠, 왜 낮에 누워 있어?" 아버지의 피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휴식을 방해하며, 아버지를 '게으른 사람'으로 판단했던 것.
그리고 지금, 나의 딸이 나에게 똑같은 것을 하고 있다.
작가 성이사: (미소를 지으며) "그래, 알았어. 치울게."
딸의 방. 펜트리. 성이사의 겨울 옷과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하나씩 꺼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딸은 옆에서 "이건 버려", "이건 다른 데 넣어", "아빠 이 옷 아직도 입어?"라고 지시했다.
그래, 이렇게 나의 딸도 내가 나의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도돌이표처럼 인생은 돌아간다.
아버지 → 나 → 딸. 봄이 오면 쉬고 싶은 아버지에게, 아들은 "왜 누워 있어?"라고 물었다. 30년 후, 봄이 오면 쉬고 싶은 아들에게, 딸은 "왜 침대에 있어?"라고 묻는다.
의문의 형식은 같다. 다만 묻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한 칸씩 밀려났을 뿐이다.
둘째딸: "아빠, 이거 뭐야? 옛날 편지?"
작가 성이사: "…어디서 났어 그거?"
둘째딸: "상자 맨 밑에 있었어. 봉투가 누래."
작가 성이사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아버지의 글씨체. 성이사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써준 편지. 봉투가 누렇게 바래 있었다. 30년 전의 종이 냄새가 났다.
편지를 펼치지는 않았다. 지금 여기서 펼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딸 앞에서.
작가 성이사: (봉투를 주머니에 넣으며) "이건 아빠가 보관할게."
둘째딸: "뭔데?"
작가 성이사: "할아버지가 아빠한테 쓴 편지."
둘째딸: "…할아버지도 편지 쓸 줄 알아?"
작가 성이사: (웃으며) "할아버지도 한때는 청년이었어."
딸은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방 정리를 시작했다. 작가 성이사는 아버지의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펜트리의 겨울 옷을 계속 꺼냈다.
저녁. 딸의 방 정리가 끝났다.
작가 성이사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왜 이 소파가 아버지의 피난처였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소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석대표도, 차트도, AI도, 거위발건염도 여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한다. 소파 위에서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주말의 소파 위에서, 눈을 감고, 봄바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아무 생각 없이.
하지만 여유가 없어서 그것을 '낭만'이라고 부르지 못했을 뿐. 취미가 없어서 그것을 '행복'이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뿐. 자녀에게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그저 소파에 누워 있는 것으로 자신의 피로를 말했을 뿐.
작가 성이사: (수첩을 꺼내며, 조용히)
아버지가 소파에서 잠든 이유를 이해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그는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 감성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돈만 벌어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봄이 오면 설레었고, 벚꽃이 피면 가슴이 뛰었고, 아내와 걸었던 길을 기억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말할 여유가 없었을 뿐. 쉬는 것이 유일한 낭만이었을 뿐. 소파가 유일한 피난처였을 뿐.
그리고 나는 그에게 "왜 누워 있어?"라고 물었다. 30년이 지나, 나의 딸이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인생은 도돌이표다. 같은 선율이 반복되지만, 부르는 사람이 바뀐다. 그리고 바뀐 사람은 비로소 이전 사람을 이해한다.
수첩을 덮었다. 주머니에서 아버지의 편지 봉투를 꺼냈다. 30년 된 종이. 누런 봉투. 아버지의 글씨체.
펼쳤다.
편지의 내용은 쓰지 않겠다. 작가 성이사만이 읽을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아버지도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소파에 누워서도.
성이사는 핸드폰을 들었다.
성이사: "…엄마."
엄마: "왜? 무슨 일이야?"
성이사: "…벚꽃 피면 나들이 갈까요? 아버지 모시고."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엄마: "…그래, 그러자. 왜 아버지에게 직접 이야기 하지 그러냐?"
성이사: "..하하."
그것으로 충분했다. 30년 늦었지만, 도돌이표는 끊을 수 있다.
봄이었다.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만개했다.

'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현재를 즐기는 자와 미래를 달리는 자의 경계에 대하여 (0) | 2026.04.04 |
|---|---|
|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를 AI가 채웠다. 완벽하게. 그래서 더 외로웠다. (0) | 2026.04.04 |
| 투자자 성이사가 클로드 코드로 만든 투자 대시보드 혁명 (0) | 2026.03.28 |
| 아식스 슈퍼블라스트3 구매 후 첫 러닝이 황궁의 오르막에서 구토 직전으로 끝나다 (0) | 2026.03.28 |
| 출장길에서만 임원이 되고, 술자리에서는 별주부전의 토끼가 된다. (0) | 2026.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