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 07:47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매월 말이 되면 성이사에게는 의식이 있다.
인사평가.
1년간 직원이 노력한 결과를 조직장이 최종적으로 평가하고 코멘트를 다는 작업. 그 결과는 인사팀으로 전해져 연봉 테이블에 반영된다. 한 사람의 한 해를 한 페이지에 정리하는 일. 무겁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이사는 이 일을 비교적 가볍게 처리했다. 민팀장이 1차 평가를 해준 인사평가서를 들고, 큰 이견이 없으면 "이견 없음" 정도만 추가하면 끝이었다. 민팀장은 7년간 팀원들을 옆에서 봐온 사람이라, 그녀의 1차 평가는 거의 정답에 가까웠다.
하지만 민팀장이 떠난 후, 모든 인사평가는 성이사가 직접 해야 한다.
같이 실무를 하지 않는 임원이 평가를 하려면, 과거의 기록을 추적해야 한다. 민팀장을 포함한 관리자들의 평가 기록, 근태 상황, 업무 일지, 슬랙 대화, 세일즈포스 활동, 팀 워크스페이스. 데이터의 바다에서 한 사람을 건져 올리는 작업.
지난달 인사평가 때, 한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는 데 2시간이 걸렸다. 데이터를 클선생, 제선생, 지선생을 통해 정리하고 분석하는 데 또 시간이 들었다. 그리고 면담은 별도로 1시간.
특히 면담은 매번 곤욕이다.
여직원과의 면담은 더더욱. 지난달 김대리와의 면담이 떠올랐다. 감정을 잘 읽지 못하는 성이사에게는, 감정을 배제한 대화조차 어렵다. 김대리의 눈이 붉어지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다.
이번 달 인사평가 대상자는 두 명. 그중 한 명은 출산휴가로 휴직 상태(신대리)여서, 평가 대상은 카와무라상 한 명이었다.
카와무라상. 일본인 직원. 일본과의 무역업 실무를 담당하는 30대 남자 직원. 항상 가장 먼저 출근하고, 지시한 일을 정확히 해내는 사람. 성이사가 마음에 들어하는 직원이었다.
그런데 막상 평가를 하려고 하니, 내가 카와무라상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성이사가 아는 것은 표면적인 것뿐이었다. 일찍 출근한다. 성실하다. 일본어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1년간 어떤 프로젝트를 이끌었는지, 어떤 어카운트를 관리했는지, 어떤 협상에서 성과를 냈는지, 슬랙에서 어떤 평을 받았는지 — 구체적인 디테일은 알지 못했다.
또 데이터를 다 찾아다녀야 하나.
성이사는 잠시 책상에 앉아 한숨을 쉬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클로드 코드.
지난번 슬랙 분석으로 클라우드 계약 건을 세 시간 만에 정리했던 그 도구. 같은 방식으로 인사평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성이사 조직의 일들은 대부분 슬랙으로 공유된다. 팀의 슬랙방이 업무적으로 5개 정도 있고, 민팀장이 성이사에게 카와무라상의 업무를 따로 알려줬던 채널도 있다. 세일즈포스에는 카와무라상이 오너로 작성한 어카운트의 리드 정보가 남아 있다.
성이사는 클로드 코드를 열었다.
성이사: (타이핑) "카와무라상의 인사평가서를 작성해줘.
데이터 소스:
- 슬랙 — 채널 #일본팀, #무역실무, #파트너관리, #민팀장공유, #카와무라1on1 (카와무라상이 언급된 모든 메시지)
- 세일즈포스 — 카와무라상이 오너로 등록된 모든 리드 및 어카운트
포맷: 회사 인사평가서 표준 양식 (성과, 역량, 태도, 개선점, 총평)"
엔터.
토큰이 녹기 시작했다. 익숙한 광경. 클로드 코드가 슬랙 API와 세일즈포스 API를 동시에 두드리며 데이터를 끌어왔다. 카와무라상이 1년간 남긴 디지털 발자국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성이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화면을 바라봤다.
5분.
5분 후, 인사평가서가 완성되었다.
화면에는 카와무라상의 1년이 정돈된 표로 펼쳐져 있었다.
성과 영역:
- 일본 B사와의 분기별 정기 미팅 12회 주도. 마츠다 상무 라인과의 신뢰 관계 구축.
- 일본 C사 신규 어카운트 개설. 연간 매출 기여도 4.2억 원.
- 한국 본사와 일본 지사 간 커뮤니케이션 브릿지 역할. 통역 외에 문화적 컨텍스트 전달.
역량 영역:
- 일본어 비즈니스 회화 네이티브 수준. 한국어도 업무 가능 수준.
- 슬랙 대응 속도 평균 12분 (팀 평균 47분).
- 세일즈포스 데이터 입력 정확도 98% (팀 평균 73%).
태도 영역:
- 평균 출근 시간 8시 12분 (팀 평균 8시 47분). 1년간 지각 0회.
- 슬랙에서 동료들에게 받은 긍정 멘션 47회. 부정 언급 0회.
개선점:
- 미팅에서 의견 표현이 다소 소극적. 본인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개진할 필요 있음.
- 한국 본사 임원진과의 직접 커뮤니케이션 빈도가 낮음.
총평: "카와무라상은 일본 사업 영역에서 신뢰성과 정확성을 인정받은 핵심 인력입니다. 데이터 기반의 업무 수행과 문화적 매개자 역할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향후 본인의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한국 본사와의 직접 소통을 확대한다면 더 큰 성장이 기대됩니다."
성이사는 화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카와무라상이 여기 있었다.
마츠다 상무 라인과의 신뢰 관계 구축. 슬랙 대응 속도 12분. 세일즈포스 정확도 98%. 출근 시간 8시 12분. 긍정 멘션 47회.
성이사가 막연하게 '성실한 직원'이라고 느꼈던 것들이, 모두 숫자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이사가 알지 못했던 것들 — 본인의 의견 표현이 소극적이라는 점, 본사 임원진과의 직접 소통이 적다는 점 — 까지 짚어내고 있었다.
이걸 사람이 했으면 일주일이 걸렸을 것이다. 데이터 수집에 2시간, 분석에 4시간, 작성에 2시간, 검토에 1시간.
5분.
1년간 카와무라상이 회사에 남긴 모든 흔적이, 5분 만에 정산되었다.
성이사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봤다.
성이사: (혼자 중얼거리며) "…기대 이상이네."
생산성 측면에서는 기분이 좋았다. 이제 데이터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누가 어떤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빠르게 알 수 있다. 병목이 되는 사람을 즉시 식별할 수 있다. 성이사가 AI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면, 오늘 상당한 시간을 인사평가서 작성과 작문에 썼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언젠가 없어지겠구나.
조직장의 역할 중 하나가 팀원의 1년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 평가가 5분 만에 가능하다면, 조직장의 그 부분 가치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만약 인사평가를 AI가 한다면, 그다음에 AI가 자동화할 수 있는 임원의 일은 무엇인가?
전략 수립? 코워크가 한다. 보고서 작성? 코워크가 한다. 계약서 검토? 코워크가 한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정리? 클로드 코드가 한다. 인사평가? 5분 만에 한다.
그러면 임원은 무엇을 하는가?
성이사는 잠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인사평가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모든 항목이 데이터 기반이었다.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카와무라상이 매일 가장 먼저 출근한다는 사실.
데이터에는 '출근 시간 8시 12분'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데이터에 없었다. 매일 가장 먼저 사무실 불을 켜고,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을 켜고, 동료들이 도착하기 전에 그날의 일과를 준비하는 그 모습. 7시 45분쯤 사무실 입구를 지나며 성이사가 흘끗 본 풍경. 그 풍경에서 성이사가 받은 인상.
'이 친구는 진짜 성실하구나.'
이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목격이었다.
성이사는 총평 칸에 한 줄을 추가했다.
성이사 (수기 추가): "팀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직원으로, 항상 가장 먼저 스탠바이를 하고 있는, 누구보다 성실한 직원입니다."
추가 후 다시 읽어봤다.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클로드가 쓴 매끄러운 문장에 비하면 투박하다.
하지만 이 한 줄은 클로드가 쓰지 못한다.
왜냐하면 클로드는 카와무라상이 매일 아침 가장 먼저 사무실에 도착하는 풍경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7시 45분의 텅 빈 사무실에 카와무라상의 노트북 LED 불빛이 켜져 있는 그 장면. 그 장면에서 한 임원이 받는 인상. 그것은 슬랙 데이터에도, 세일즈포스 리드에도, 가민 워치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성이사는 인사평가서를 저장하고, 인사팀에 전송했다. 시간을 봤다. 데이터 수집부터 평가서 작성, 마지막 한 줄 추가까지 — 총 8분이 걸렸다.
5분은 클로드의 시간이고, 3분은 내 시간이다.
성이사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다행이다. 내가 평가할 항목이 아직 남아 있어서.
작가 성이사: (옆에서, 수첩에 적으며) "5분 만에 끝난 1년. 1년 안에 임원의 1년도 5분이 될까."
성이사: "야. 그건 좀 무섭다."
작가 성이사: "사실인 게 더 무섭지."
성이사: "…네 일자리부터 위험할 거야."
작가 성이사: "그건 또 왜?"
성이사: "내 마지막 한 줄도 클로드가 5분 안에 쓸 수 있으면, 너도 필요 없잖아."
작가 성이사: "……."
성이사: "농담이야. 너 없으면 누가 이런 에피소드를 쓰겠어."
작가 성이사: "…농담을 농담처럼 안 하는 게 너의 매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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