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14. 14:20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지난주 널뛰던 주식시장이, 이번 주에도 널뛰고 있었다.
다만 투자자 성이사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지난주의 패닉 — 금요일 매수, 화요일 물타기, 수요일 대폭락, 아내에게 진 밤 — 을 거치면서 무언가가 변했다. 정확히 무엇이 변했는지 투자자 성이사 스스로도 정의할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이번 주 그가 주식 창을 하루에 두 번 밖에 열지 않았다는 것이다.
슈퍼 성이사: "야, 너 오늘 몇 번 열었어?"
투자자 성이사: "아침에 한 번, 장 마감 후에 한 번."
슈퍼 성이사: "…지난주에 분 단위로 열던 사람이?"
투자자 성이사: "총알이 없으면 사격장에 갈 이유가 없잖아."
총알이 없었다. CMA는 텅 비어 있었다. 추격 매수도, 불타기도, 물타기도 할 수 없었다.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편할 생각도 없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구조적 포트폴리오를 허무는 것은 패닉의 연장일 뿐이다.
투자자 성이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관찰.
어제의 예측과 오늘의 시장 사이를 비교하며, 미세 조정으로 시장의 방향을 가늠하는 것. 매수도 매도도 아닌, 순수한 관찰. 이번 주에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코스피의 지지선이 대략 5,000 정도라는 것. 그 아래로는 잘 빠지지 않았고, 빠져도 빠르게 반등했다. 이 정보 하나가 지난주의 패닉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총알을 다 쓰고 나니, 오히려 시장이 보인다.
그리고 이번 주, 투자자 성이사에게 새로운 고민이 찾아왔다.
투자자 성이사: (혼잣말) "S&P 500이… 흔들릴 수 있다고?"
그가 그토록 굳건하게 믿었던 미국 시장. 미국의 S&P 500은 투자의 교과서에서 '장기 투자의 정답'처럼 다뤄지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란 사태와 미국의 불안정한 정책이 겹치면서, 그 정답에 물음표가 붙기 시작했다.
개별 주식과 ISA, IRP, 개인연금은 현재 상태에서 리밸런싱 없이 두더라도, 퇴직연금만큼은 좀 더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
투자자 성이사는 세 명의 스승을 소환했다.
투자자 성이사: "퇴직연금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고 싶어. 현재 미국 시장의 불안정성을 감안하면, 한국 증시 비중을 좀 높여야 하지 않을까?"
지선생이 먼저 답했다.
지선생(GPT): "퇴직연금의 특성상 장기 관점이 필요합니다. 미국 시장의 단기 불안정성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지만, 장기적으로 S&P 500의 수익률은 다른 지수를 일관되게 상회합니다. 자산 배분의 코어는 미국 쪽에 유지하시되, 한국 비중 확대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제선생이 이어졌다.
제선생(Gemini): "동의합니다. 코스피, 코스닥 ETF 비율은 오히려 낮추는 것을 권합니다. S&P 500과 나스닥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채권 비중으로 변동성을 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클선생이 마무리했다.
클선생(Claude): "세 가지 관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퇴직연금은 성이사님의 노후 자금이므로 가장 보수적인 전략이 맞습니다. 둘째, 그러나 보수적이라는 것이 '한국 비중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셋째, 현재 시점에서 가장 보수적인 전략은 자산 배분의 기본 원칙 — 글로벌 분산, S&P 500 코어, 채권 헤지 — 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세 명 모두 같은 말이었다. 미국 중심 유지. 한국 비중 축소.
투자자 성이사는 불만이었다.
투자자 성이사: "야, 근데 너네 셋 다 미국 출신이잖아. 편향 아니야?"
클선생: "데이터에 국적은 없습니다."
투자자 성이사: "그래도 내가 분석한 한국 증시 데이터가 있는데. 최근 반도체 수주, 원전 수출, K-배터리 성장률. 이거 보면 코스피도 충분히 경쟁력 있거든?"
투자자 성이사는 자신이 정리한 데이터를 세 스승에게 던졌다. 한국 증시의 긍정적 지표, 개별 종목의 실적 성장, 밸류에이션 매력도. 꽤 설득력 있는 자료였다.
하지만 세 스승은 완강했다.
지선생: "개별 기업의 성장과 시장 전체의 흐름은 다릅니다. 코스피의 구조적 할인 — 지배구조, 배당 성향, 원화 약세 리스크 — 을 고려하면…"
제선생: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 매력은 인정하지만, 환 리스크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안하면 퇴직연금에서 비중을 늘리는 것은 리스크 조정 수익률 관점에서…"
클선생: "성이사님의 데이터는 투자자 성이사의 관점이고, 저희가 드리는 것은 퇴직연금 수급자의 관점입니다. 이 두 관점의 리스크 허용도는 다릅니다."
투자자 성이사는 입을 다물었다. 클선생의 마지막 한 줄이 결정타였다. 투자자 성이사와 퇴직연금 수급자의 입장은 다르다. 하나는 모험적 투자가이고, 하나는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논리가 치밀했다. 세 명 모두.
투자자 성이사: (한숨) "…좋아. 그러면 이런 불확실한 시대에, 조정보다는 관망이 맞지 않을까?"
세 스승 모두가 동의했다.
지선생: "관망이 합리적입니다."
제선생: "당분간 포지션 변경 없이 시장을 모니터링하시길 권합니다."
클선생: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전략입니다. 가장 어려운 전략이지만."
투자자 성이사에게 관망이란, 야구에서 타석에 서지 않는 것과 같았다. 공이 날아오는데 배트를 들지 않는 것. 이것은 소심함이 아니라 인내다. 하지만 한때 야수의 심장을 가지고 시장을 바라보던 투자자 성이사에게 인내는 가장 낯선 근육이었다.
직장인 성이사: (옆에서) "야, 너 요즘 달라졌다."
투자자 성이사: "뭐가."
직장인 성이사: "예전에는 주식 이야기하면 눈에 불을 켰는데, 요즘은 좀… 사람 같아졌어."
투자자 성이사: "사람 같다니."
직장인 성이사: "야수가 아니라 사람."
투자자 성이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맞는 말이었다. 주식을 시작한 이래 그는 야수의 심장을 자랑했다. 하락장에서 매수하고, 공포에서 사고, 남들이 팔 때 버티는 것. 그것이 자신의 무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난주의 폭락이 그 야수의 심장을 박살냈고, 아내의 세 마디가 그 잔해를 청소했고, 세 스승과의 대화가 새로운 심장을 심어줬다.
야수의 심장이 아니라, 이성과 AI의 심장으로.
투자자 성이사는 여전히 직장인 성이사의 눈치를 봤다. 월급이 들어와야 투자를 할 수 있으니까. 아내의 눈치도 봤다. 가정의 재무 안정이 투자의 전제이니까. 슈퍼 성이사와 작가 성이사에게는 여전히 잔소리를 했다. "러닝화 또 사게?" "여행 비용이 얼마야?" 하지만 그런 그도 이제는, 세 명의 스승과 합의되지 않으면 매수 버튼을 누르지 않는 투자자가 되어 있었다.
투자자 성이사: (창밖을 보며, 조용히) "야수의 심장이 나쁜 건 아니었어. 그 심장이 있었으니까 반도체에 탈 수 있었고, 하락장에서 버틸 수 있었고. 다만…"
직장인 성이사: "다만?"
투자자 성이사: "야수만으로는 오래 못 달려. 이성이 필요하고, 데이터가 필요하고,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는 용기가 필요하더라."
직장인 성이사: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투자자 성이사: "주가 천 포인트 빠지면 사람이 변해."
관망의 주말. 투자자 성이사는 증권 앱을 열지 않았다. 대신 아내와 같이 마트에 갔다. 장을 봤다. 저녁을 만들었다. 이것은 투자가 아니지만, 가정이라는 포트폴리오에 대한 투자라고 투자자 성이사는 생각했다.
야수가 잠들고, 인간이 깨어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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