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11. 21:55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주말. 벚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급체로 한강의 봄을 느끼지 못했다.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한 한강을 브롬톤으로 달릴 수 있었는데, 슈퍼 성이사의 위장이 파업하는 바람에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작가 성이사에게는 참을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슈퍼 성이사: (경고 모드) "이번 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라이딩을 가야 해. 맥주 한 잔이라도 마시면 내일 한강 안 갈 거야?"
작가 성이사: "맥주랑 한강이랑 무슨 상관이야."
슈퍼 성이사: "지난주에 누가 벚꽃 타령하면서 맥주 2캔 마셨어? 그다음 날 내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나?"
작가 성이사: "그건 급체 때문이지 맥주 때문이 아니잖아."
슈퍼 성이사: "제선생이 뭐라 그랬는지 기억나? 맥주가 방아쇠 중 하나였다고."
작가 성이사: "…2캔인데."
슈퍼 성이사: "2캔이 3캔 되고, 3캔이 5캔 되는 거 내가 몰라?"
작가 성이사는 할 말을 잃었다. 전과가 너무 많았다.
금요일. 작가 성이사는 이번 주의 성이사 다중우주를 돌아봤다.
성이사와 박차장의 티타임이 인상 깊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와 '누구와 할 것인가'의 차이. 목표를 세우는 사람은 리더가 되고, 줄을 서는 사람은 그 아래서 일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에는 항상 현재가 바빴다. 그리고 미래가 걱정이었다. 매일 흔들렸다. 철학의 부재로 그 흔들림은 때론 시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시련 속에서 패턴을 찾았다. 개똥철학처럼 보잘것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철학이 생겼다. 이 철학이 때로는 꼰대가 되기도 하고, 부하직원들에게 잔소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경험이 철학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것은 깨달음이었다. 깨달음이 많아지니 사는 것이 단순하게 보였다. 주말에 꼭 무엇을 해야 한다, 어떤 계획을 완료해야 한다는 관점보다, 루틴대로 하루하루 사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주말. 직장인 성이사는 회사일을 내려놓고 쉰다. 슈퍼 성이사는 달리고 라이딩을 한다. 투자자 성이사는 투자 공부를 한다. 작가 성이사는 글을 쓰고 가족을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의 철학을 생각한다.
그게 평화로운 주말의 루틴이다.
아이들도 다 커버려서 거창한 가족 여행은 없다. 와이프도 혼자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의 우주였던 성이사는, 아이들의 세계관이 커지면서 다른 행성이 되었다. 다른 행성들이 같은 공간에 가족으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여행 가기 좋은 곳이 나오면 이 행성들은 소리친다. 작가 성이사도 호응하며 소리친다. 이때 투자자 성이사가 나타나면서 항상 이야기한다.
투자자 성이사: "낭만은 짧고 인생은 길다."
벚꽃은 때가 되면 떨어진다. 가장 화려하게 피고, 또 진다. 그렇게 봄은 지나간다.
토요일 밤.
작가 성이사는 무엇인가 끄적이고 싶어졌다. 수첩을 펴고, 펜을 들고. 하지만 글이 잘 안 써졌다. 영감이 필요했다.
영감에는 맥주가 필요했다.
작가 성이사는 슬금슬금 펜트리로 향했다. 문을 열었다. 캔맥주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지난번에 '다음 글이 잘 써졌을 때 마시겠다'고 남겨놓은 세 번째 캔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새로 사온 것이었다.
작가 성이사는 맥주를 집어 들고 김치냉장고로 향했다. 차갑게 해서 마셔야 제맛이니까. 펜트리에서 김치냉장고까지, 거리 3미터.
3미터를 걷는 동안.
슈퍼 성이사: (소리치며) "내일 또 한강 안 갈 거니!?"
작가 성이사가 멈칫했다. 맥주 캔이 손 안에서 차가워지기도 전에, 슈퍼 성이사의 경고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작가 성이사: (돌아보지 않고) "…한 캔만."
슈퍼 성이사: "한 캔이 두 캔 되고, 두 캔이 세 캔 되는 거 내가 몰라?"
작가 성이사: "이번엔 진짜 한 캔이야."
슈퍼 성이사: "지난번에도 그랬어. 지지난번에도 그랬어. 지지지난번에도."
작가 성이사: (맥주를 김치냉장고에 넣으며) "봄이잖아. 벚꽃이 떨어지잖아. 이런 봄날에 한 캔도 못 마시면 그게 사는 거야?"
슈퍼 성이사: "사는 게 아니라 내일 아침 상태가 문제라니까."
작가 성이사: "내일 아침은 내일 아침의 성이사가 해결해."
슈퍼 성이사: "그 내일 아침의 성이사가 나라고!"
작가 성이사: "……."
슈퍼 성이사: "……."
침묵이 흘렀다.
투자자 성이사: (소파에서, 눈을 감은 채) "낭만은 짧고 인생은 길다."
작가 성이사: (김치냉장고 앞에 서서) "하지만 맥주는 차갑고 벚꽃은 지금이다."
슈퍼 성이사: "……."
작가 성이사: "그리고 나는 봄밤의 흡혈귀야. 맥주를 빨아야 하는 흡혈귀."
슈퍼 성이사: "…그건 또 무슨 비유야."
작가 성이사: "흡혈귀는 피를 마셔야 살잖아. 작가는 맥주를 마셔야 써. 생물학이야."
슈퍼 성이사: "그런 생물학은 없어."
작가 성이사: "있어. 내가 방금 만들었어."
슈퍼 성이사: (한숨) "…매번 새로운 과학을 만들어내는 것만큼은 인정한다."
김치냉장고에서 맥주가 차가워지기를 기다리는 30분. 작가 성이사는 수첩을 펼쳤다.
벚꽃은 때가 되면 떨어진다. 가장 화려하게 피고, 가장 빠르게 진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건 너무 많은 사람이 한 말이니까. 대신 이렇게 쓰겠다. 벚꽃이 지는 것은, 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봄이 다음 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잎이 나고, 잎이 나면 그늘이 생기고, 그늘이 생기면 누군가가 앉아서 쉬고, 쉬면서 맥주를 마신다.
그러니까 벚꽃은 맥주를 위해 떨어지는 것이다.
수첩을 덮었다. 김치냉장고를 열었다. 맥주가 적절히 차가워져 있었다.
프쉬.
봄밤의 맥주 흡혈귀가 첫 모금을 마셨다. 벚꽃이 바람에 날렸다. 내일 슈퍼 성이사가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잔소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오늘 밤이다.
낭만은 짧다. 인생은 길다. 하지만 이 한 캔이 내일의 한 줄이 된다면, 그것은 투자다.
투자자 성이사: (소파에서, 잠결에) "…그 논리로 맥주를 투자라고 우기면 나도 할 말 없다."
벚꽃이 지고, 맥주가 차갑고, 맥주 흡혈귀가 깨어나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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