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 했다. 돌아온 것은 "그 물고기 내 이름으로 올려줘"였다.

2026. 4. 18. 09:19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성이사의 첫째 딸 유진은 고민이 많다.

대학교 4학년. 고등학교 동창 중에는 이미 취업한 친구도 있고, 진로를 정한 친구도 있고, 어학연수 중인 친구도 있다. 하지만 유진은 고민만 할 뿐,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서 답답한 눈치다.

성이사의 다중우주에서 딸의 이런 고민에 가장 민감한 것은 투자자 성이사였다.

투자자 성이사는 딸들에게 연초와 연말에 투자 자금을 주고 ETF나 개별 주식에 투자를 유도해왔다. 자본소득을 얻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 투자자 성이사의 교육 철학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진에게 필요한 것은 투자 교육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투자자 성이사의 시각으로 보면, 유진이 취업 시장에 나갔을 때 면접관들이 보는 것은 상품성이다. 왜 이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 이 사람은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가? 그 답이 유진에게 있어야 한다.

금요일 저녁. 유진이 거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투자자 성이사가 옆에 앉았다.

 

투자자 성이사: "유진아."

유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응."

투자자 성이사: "요즘 대세인 한로로 알아?"

유진: "알지. 인스타에서 맨날 나오는데."

투자자 성이사: "한로로가 너랑 같은 인문학과야. 근데 자기가 뭘 잘하는지 알고, TV나 매체에 나와서 열심히 자신을 어필하잖아. 너는 어떤 걸 어필할 거야?"

유진: "몰라."

투자자 성이사: "뭘 어필할지 모르면 뭘 하고 싶은 건 있어?"

유진: "귀찮아. 우울하니까 말하지 마."

 

투자자 성이사는 입을 다물었다. '나 때는'을 꺼내고 싶었다. 당시 나는 그래도 뭔가를 하려고 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목표가 없다는 건 좀…

하지만 잠깐. 형제 중에 대학 생활이 가장 무기력했던 막내 여동생이 지금은 형제 중에 가장 잘 산다. 누구나 자기 밥값은 한다. 잔소리를 그만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투자자 성이사에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지난번에 투자 성과 대시보드를 클로드 코드로 만들었잖아. 그러면…

 

투자자 성이사: "유진아, 하나만 더 물어볼게."

유진: (시큰둥) "뭐."

투자자 성이사: "요즘 회사에서 아빠가 대부분의 일을 AI로 해. 만약 네가 회사를 가고 싶든, 뭔가를 하고 싶든, 아니 뭘 할지 모르겠더라도, AI를 잘 써봐."

유진: (살짝 고개를 돌리며) "아빠, 나 이미 제선생이랑 대화 많이 하고 있어."

투자자 성이사: "오? 그래? 그러면 아빠가 구독료 줄 테니까 클선생이나 지선생도 유료로 구독해 봐."

유진: "지금 제선생만으로 충분해."

투자자 성이사: "그러면 제선생으로 뭘 하는데?"

유진: "과제할 때 물어보고, 자소서 쓸 때 첨삭받고."

투자자 성이사: "……."

그건 AI를 쓰는 게 아니라 AI에게 숙제를 시키는 거잖아.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접근을 했다.

유진: "그리고 올해 토익 점수 기준 맞춰야 졸업이라도 하는데, 뭘 할지도 모르겠고, 졸업을 할지도 모르겠고. 답답해."

 

투자자 성이사는 유진의 답답함을 들으며, 지난번 투자 성과 대시보드를 만들었던 일을 떠올렸다. 클로드 코드로 10분 만에 만들었던 그 대시보드. 토익 단어장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투자자 성이사는 클로드 코드를 열었다.

 

투자자 성이사: (타이핑) "토익 시험에 자주 나오는 필수 단어 1,000개를 뽑아서, 매일 하루에 10개씩 외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줘. 각 단어마다 작문 예시, 퀴즈, 해석을 포함하고, 오답 노트 기능도 추가해줘. 웹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클로드 코드가 돌아갔다. 20분 후, 토익 단어장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 깔끔한 UI, 일일 목표 추적, 퀴즈 모드, 오답 자동 수집.

투자자 성이사는 프로그램을 캡처해서 유진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같은 집에 있지만 카카오톡으로.

 

투자자 성이사 → 유진: "유진아, 이거 아빠가 클로드 코드에 이것저것 이야기했더니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야. 토익 단어장. 오히려 너 이런 거 잘하는 것들 있으면, 이런 걸로 애플 앱스토어에 앱을 만들어서 등록하거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올리고, '나는 인문계지만 이런 걸 했다'는 걸 스펙으로 만드는 건 어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낚싯대를 주는 것이다. 클로드 코드라는 낚싯대를.

10초 후.

방문이 벌컥 열렸다. 유진이 한걸음에 투자자 성이사 앞으로 튀어 왔다. 소파에서 일어나지도 않던,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던 유진이, 눈을 반짝이며 달려왔다.

유진: "아빠!"

투자자 성이사: (기대하며) "오?"

유진: "지금 만든 그 프로그램, 그거 내 이름으로 앱스토어에 올려줘."

투자자 성이사: "……."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 했다. 돌아온 것은 "그 물고기를 달라"는 답변이었다.

투자자 성이사: "…유진아, 아빠가 말한 건 네가 직접 만들어보라는…"

유진: "아빠가 만든 거 올려주면 되잖아. 내가 기획한 거니까."

투자자 성이사: "기획은 아빠가 했는데?"

유진: "아빠가 시킨 건 AI잖아. 그러면 AI가 기획한 거고. 아빠는 프롬프트만 쳤잖아. 나도 프롬프트 칠 수 있어."

투자자 성이사: "……."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다.

 

작가 성이사: (옆에서, 감탄하며) "유진이 대단한데. 우리 다중우주에서 가장 AI 시대에 적합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야."

투자자 성이사: "뭐가 대단해. 남이 만든 걸 자기 이름으로 올리겠다는 게?"

작가 성이사: "그게 AI 시대의 핵심 아니야? 직접 만들 필요 없이, 만들게 시키고, 자기 이름으로 출시하는 것. 유진이 미래형 인재야."

투자자 성이사: "…미래형 인재가 토익 공부를 안 해서 졸업을 못 하고 있는데?"

유진: (이미 방으로 돌아가며) "아빠, 앱스토어 올려놓으면 카톡해!"

방문이 닫혔다.

투자자 성이사는 클로드 코드 화면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멍했다.

 

슈퍼 성이사: (옆에서) "야, 유진이 카톡 씹으면 어떡해."

투자자 성이사: "…그건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 앱스토어 심사팀이 걱정할 일이야."

작가 성이사: (수첩에 적으며) "물고기를 달라. 21세기 최고의 효율적 어업 전략."

<물고기를 잡는 방법보다 잡은 물고기가 더 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