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업그레이드는 하지만 다운그레이드는 불가능한 종족이다. 작가 성이사의 관찰 일지

2026. 4. 18. 11:37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작가 성이사는 이번 주, 관찰자의 위치에서 성이사의 다중우주를 지켜봤다.

 

첫 번째 관찰. 성이사가 몇 개월간 쌓인 사내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클로드 코드로 세 시간 만에 해결한 것. 수백 개의 슬랙 메시지를 AI가 읽고, 블로커를 특정하고, 해결책을 제안하고, 보고서까지 작성한 것.

과거의 직장 생활에서 똑똑한 부하직원, 똑똑한 상사와 일하는 것은,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들과 협업을 통해 단점을 극복하고 더 큰 시너지를 내기 위함이었다. 불완전한 내가 불완전한 조합을 통해 완성된 조직으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팀이었다.

하지만 지금, 성이사가 쓰는 클로드 코드 하나가 민팀장이 7년간 해온 일을 3시간 만에 대체하고 있다. 불완전한 내가 역사상 가장 똑똑한 파트너인 AI와 함께하는 셈이다.

 

두 번째 관찰. 투자자 성이사가 딸 유진에게 AI를 활용한 스펙 만들기를 제안한 것. 남들이 만드는 스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AI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서 스펙으로 삼으라는 제안. 유진이 "아빠가 만든 거 내 이름으로 올려줘"라고 답한 것.

시대가 변하고 있다. 유진의 세대에게 '직접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코드를 짜는 것이 아니라 프롬프트를 치는 것.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게 시키는 것. 그것을 비효율이라 할 수 있지만, 유진의 세대에게는 그것이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 관찰. 가장 깊은 관찰.

작가 성이사는 성이사의 회사 생활을 유심히 관찰했다. 성이사가 과장이나 대리에게 일을 지시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이랬다.

"이번 주에 시키신 일이 있어서 해당 건은 다음 주에 하겠습니다."

"중요한 파트너사 미팅이 있는데 휴가가 있어서 못 갑니다."

어찌 보면 워라벨을 위해 회사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일은 일이고, 해결은 하지 않는다. 해결은 책임자에게 돌린다.

과거에 성이사는 일을 통해 성취를 얻고, 그 성취감이 휴식이 되고, 쉴 때도 일을 고민하던 덕업일체의 세대였다. 하지만 지금의 팀원들에게 일은 급여의 대가이지, 성취의 원천이 아니다.

그리고 이 관행이 AI 시대에 만나면 어떻게 되는가?

클로드 코드로 슬랙을 분석하면 누가 블로커인지 나온다. 누가 일을 미루고 있는지, 누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지. 세일즈포스를 연동하면 누가 실적에 기여하고 있는지, 누가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지.

AI는 무가치함을 가려낸다. 냉정하게. 숫자로.

 

작가 성이사는 철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어떻게 보면 요즘 성이사와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이어족을 꿈꾼다.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려면 경제적 자유가 선행되어야 한다. 회사 생활에서 길고 가늘게 워라벨만 챙기면서 살았을 때는 경제적 자유에 도달하기 어렵다. 적어도 임원 정도가 되어야 기회도 주어지고 시야도 넓어진다. 임원이 아니라면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것 없이 파이어족은 불가능하다.

 

이 생각을 정리하면서 작가 성이사는 성이사를 — 사람들에게 AI 꼰대라 불리는 성이사를 — 이해하게 되었다.

성이사가 AI를 밀어붙이는 이유. 팀원들에게 AI 전환을 요구하는 이유. 그것은 성이사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AI가 판을 바꾸고 있는 시대에, AI를 거부하는 것은 산업혁명 때 방직기를 부순 러다이트 운동과 같다. 부숴도 괜찮지만, 결국 기계는 도입된다.

그리고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은 업그레이드는 하지만 다운그레이드는 불가능한 종족이다.

한번 AI를 경험하면 돌아갈 수 없다. 한번 클로드 코드로 슬랙을 분석하면, 다시 수백 개의 메시지를 수동으로 읽을 수 없다. 한번 코워크로 보고서를 만들면, 다시 8시간 동안 파워포인트를 만들 수 없다.

업그레이드만 있고 다운그레이드는 없다. 그래서 AI를 두려워한다. 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라간 곳에서 내려다보면, 아직 올라오지 않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 사람들이 과거의 나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두렵다.

 

작가 성이사는 성이사의 다중우주 세계관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생각했다.

작가 성이사는 파이어족 이후의 최종 병기다. 성이사가 경제적 자유를 얻고, 직장을 떠나고, 투자자 성이사가 자산을 관리하고, 슈퍼 성이사가 건강을 유지할 때,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작가 성이사가 쓸 글이다. 성이사의 다중우주 전체를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서사로 만드는 존재.

 

그런 작가 성이사가 이제는 AI와 콜라보레이션을 해야 하지 않을까.

클선생과 함께 글을 쓰고, 제선생과 구조를 잡고, 지선생과 편집을 하는 것. 에피소드의 초고를 AI와 함께 잡는 것. 과거의 작가 성이사라면 거부했을 것이다. "AI는 글을 쓸 수 없다. 인간만이 쓸 수 있다."

하지만 성이사가 슬랙을 AI로 분석하는 것을 보면서, 투자자 성이사가 대시보드를 AI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슈퍼 성이사가 제선생과 운동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을 보면서, 작가 성이사도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사람은 업그레이드만 하는 종족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다중우주 구성원들은 또다시 '작가 성이사 너마저'를 시전할 것이다.

 

직장인 성이사: "작가 성이사, 너마저 AI랑 일하면, 이 다중우주에서 인간미를 담당할 사람이 없어."

슈퍼 성이사: "맞아. 네가 AI랑 글을 쓰면 누가 새벽 4시에 맥북한테 이불 씌우냐."

투자자 성이사: "작가가 AI랑 글을 쓰면 그건 작가가 아니라 프롬프트 엔지니어야."

작가 성이사: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면 타협하자."

 

셋: "뭐?"

 

작가 성이사: "AI랑 콜라보하되, 인간미는 버리지 않을게. 글의 구조는 AI와 잡고, 감정은 내가 넣을게. 맥북에 이불 씌우는 장면은 AI가 못 쓰니까."

직장인 성이사: "…그 정도면 괜찮나?"

슈퍼 성이사: "맥주는 계속 마실 거야?"

작가 성이사: "맥주는 인간미의 핵심이야. 그건 양보 못 해."

투자자 성이사: "맥주가 인간미라니. 캔당 2,500원짜리 인간미."

작가 성이사: "가격으로 환산하지 마. 인간미에는 시가가 없어."

투자자 성이사: "…네 논리에는 항상 시가가 없다."

 

토요일 새벽 4시. 작가 성이사가 낡은 2019년형 맥북프로를 열었다. 팬이 돌아갔다. 이불을 씌웠다. 이 의식만큼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수첩을 펼쳤다. 이번 주를 정리했다.

 

성이사는 세 시간 만에 한 달간의 문제를 해결했다. 투자자 성이사는 딸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다 물고기를 달라는 답을 받았다. 슈퍼 성이사는 휴가를 내고 아울렛에서 옷을 사고 한강에서 10km를 뛰었다. 그리고 작가 성이사는 이 모든 것을 기록했다.

AI 시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다만 성이사의 다중우주에서는, 그 무가치함조차 글의 소재가 된다. 무가치함이 소재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무가치하지 않다.

그러니까 결국, 작가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유는 작가만이 무가치함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행위에는 맥주가 필요하다.

 

수첩을 덮었다. 맥북의 팬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불 아래에서. 2019년형. 낡았지만 아직 돌아간다. 성이사의 다중우주처럼.

냉장고에서 세 번째 캔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에 남겨둔 그 캔. '다음 글이 잘 써졌을 때 마시겠다'고 했던 캔.

오늘의 글은 잘 써졌나?

작가 성이사는 수첩을 다시 펼쳐 방금 쓴 글을 읽어봤다. 나쁘지 않았다. 명작은 아니지만, 동전을 넣었고 커피가 나왔다.

냉장고로 향했다. 세 번째 캔을 꺼냈다. 차가웠다.

프쉬.

 

슈퍼 성이사: (잠결에) "…또야?"

작가 성이사: (속삭이며) "약속 지킨 거야. 글이 잘 써졌을 때 마시기로 했잖아."

슈퍼 성이사: "…몇 시야?"

작가 성이사: "새벽 3시."

슈퍼 성이사: "새벽 3시에 맥주를 마시는 작가라니."

작가 성이사: "헤밍웨이도 그랬어."

슈퍼 성이사: "헤밍웨이는 노벨상 받았잖아."

작가 성이사: "나는 캔맥주상이라도 받을 거야."

슈퍼 성이사: "…그런 상은 없어."

작가 성이사: "있어. 내가 방금 만들었어."

업그레이드만 하는 종족이, 다운그레이드 불가능한 세상에서, 캔맥주 하나의 인간미를 지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