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23. 10:52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토요일 오후. 4시 17분.
베란다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려 있었다. 30도가 넘는 한낮을 지나, 이제 햇볕이 약간 비스듬하게 거실로 들어왔다. 작가 성이사는 거실 식탁 옆에 앉아 캔맥주 한 캔을 따고 있었다. 프쉬.
낮맥. 작가 성이사가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 중 하나. 더위가 절정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토요일 오후, 슈퍼 성이사가 한강 60km를 마치고 돌아와 거실 소파에서 나른해진 상태. 그 나른함이 작가 성이사에게 시간 부자의 감각을 선물했다.
작가 성이사는 노트북을 폈다. 빈 문서 화면. 깜빡이는 커서.
오늘의 주제는 며칠 내내 머릿속을 굴러다니던 한 단어였다.
셀프 맞벌이.
이 단어가 떠오른 것은 어젯밤이었다. 식탁 옆에서 성이사가 AI 전환율 보고서를 정리하는 모습과, 그 옆 모니터에서 투자자 성이사가 DC 리밸런싱 매수 버튼을 누르는 모습이 같은 거실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같은 사람의 안에서 두 명이 각자의 시간에 일하고 있었다. 한 명은 근로 소득을 지키고, 다른 한 명은 자본 소득을 늘리고. 둘 다 AI를 도구로 쓰면서.
작가 성이사는 그 풍경에서 한 단어를 발견했다. 셀프 맞벌이.
성이사와 투자자 성이사는 이제 AI 없이는 불안하다. 둘 다 AI 중독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의 생각의 해석을 클로드에 맡기고, 업무와 투자의 구조화도 AI로 만든다.
이상한 현상이었다. AI는 그들을 대체할 수도 있는 도구인데, 그 도구 없이는 이제 일을 못 한다. 마치 자기를 죽일 수도 있는 약을 매일 먹어야 살 수 있는 환자처럼.
성이사만 봐도 AI로 인해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 이미 오퍼레이션 단계 업무는 AI로 대체하라는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 직장이 영원할 수 없다.
투자자 성이사는 이런 불안한 시대에 성이사의 월급을 자본으로 바꾼다. 주식과 퇴직연금. 배당금. 이자 수익. 점점 늘어나는 금융 소득.
물론 아직은 성이사의 월급이 다중우주 가족의 절대적 금전 공급원이다. 그러나 셀프 맞벌이가 시작되면서 근로 소득 독박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자본 소득이 늘어나고 있다.
정말 다행이면서도, 작가 성이사는 다른 한편으로 후회했다. 투자가 좀 더 빨랐다면 어땠을까.
10년 전 그 여름의 인사발령 직후, 어머니의 봉투를 안주머니에 넣고 운전하던 밤 그날부터 경제적 안전판이라는 단어를 명치에 박았으면서도, 실제 개별주와 ETF 매수는 그로부터 3~4년 후에야 시작했다. 그 3~4년의 시간이 복리의 가장 가파른 구간이었다는 것을 — 한참 후에야 알았다.
복리는 무자비하다. 시작이 늦으면 그 곡선의 가장 큰 부분을 놓친다. 그것이 늦은 학습자의 영원한 후회였다.
캔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차가운 거품이 입천장에 닿았다.
작가 성이사는 이번 글의 다음 주제를 잡았다. 파블로프의 개.
직장인 성이사가 임원으로 겪는 스트레스를 보면서, 작가 성이사가 한 번씩 떠올리는 이미지였다. 임원은 어떻게 보면 자본가의 가장 충실한 개다.
평직원 대비 급여를 많이 받는다. 급여는 제 날짜에 딸랑 들어온다. 매월 25일.
급여가 들어오기 전부터, 그 돈은 이미 조각조각 잘려나가 있다.
- 근로소득세
- 지방소득세
- 의료보험료
- 국민연금
- 고용보험
세전 금액에서 이 다섯 가지가 잘려나간 후, 세후 금액이 통장에 찍힌다. 통장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잘려나간다.
- 아내가 가져가는 생활비
- 아이들 용돈
- 지난달 카드 결제액
- 구독료 (넷플릭스, 클로드 Max, 통신비, …)
남는 돈으로 이번 달의 소비가 시작된다. 그 소비가 다음 달의 카드 결제액이 된다.
이 사이클이 멈추지 않는다. 매월 25일이 되면 입에 침이 고이는 파블로프의 개의 상태가 정확히 임원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급여가 높을수록 더 심해진다.
작가 성이사는 그 역설이 흥미로웠다. 보통 사람들은 급여가 높으면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다. 급여가 높을수록 근로소득세가 더 비례적으로 늘어나고, 세후 금액도 커진다. 그 큰 금액은 나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기 위해 쓰여진다. 또는 보상 심리로.
자기 위치를 보여주는 옷. 비슷한 계층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 더 좋은 집. 더 좋은 하차감을 위한 차. 모든 것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보상받는 행위였다.
결핍이 갈망을 만든다. 갈망이 소비를 만든다. 소비가 다시 결핍을 만든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굳이 남산타워에 가지 않는다.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 언제든 살 수 있는 것은 갈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면 끝이니까. 살 수 없는 것만이 갈망의 대상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 결핍이 많았던 사람들은 평생 그 결핍을 보상받으려 한다.
결핍의 근본적 치료는 — 압도적인 풍족함이다.
작가 성이사는 그 단어에 한 번 더 멈췄다. 압도적인 풍족함.
풍족하면 언제든 살 수 있다. 살 수 있으면 갈망이 사라진다. 갈망이 사라지면 결핍이 사라진다. 결핍이 사라지면 마음이 한 톤 가벼워진다.
이것이 경제적 자유의 본질이었다. 단순히 돈이 많은 상태가 아니라, 결핍의 감각이 사라진 상태. 그 상태에 도달하면 비로소 남의 기준이 아닌 자기 기준으로 살 수 있다.
직장인 성이사는 매월 월급으로 결핍을 메꿨다. 그러나 다음 달이면 같은 결핍이 다시 생긴다. 월급쟁이는 그 루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생각해보면 월급 루틴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 연예인. 인기 인플루언서. 사업가. 정치인. 상속인. 전문직. 이 세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월급의 루틴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산다.
월급쟁이가 받는 직책은 자신의 브랜드 결핍을 월급으로 포장하고 메꾸는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직책이 곧 정체성인 사람은, 직책이 사라지면 정체성도 사라진다. 10년 전 그 여름의 인사발령에서 성이사가 정확히 그 경험을 했다.
월급쟁이가 자기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 근로 소득과 자본 소득 두 개가 필요하다.
어느 날 이 두 소득의 공급이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면, 그 사람은 비로소 자본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 회사의 의자가 바뀌어도 자기 인생의 의자는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작가 성이사가 10년 전 그 여름의 책 한 줄에서 발아한 명제의 완성형이었다.
경제적 안전판이 있어야 선택이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 작가 성이사는 맥주 한 모금 더 마시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금융적 문제가 해결되어도, 사람은 늘 불안하다. 자기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현재를 잘 살아가지 못한다. 돈이 있다고 행복이 자동으로 오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루틴이 필요해진다.
매일 한강을 달리고 라이딩을 하는 슈퍼 성이사의 루틴. 매일 주말에 글을 쓰는 작가 성이사의 루틴. 이 두 루틴이 없으면 경제적 자유에 도달해도 사람은 불안하다. 통장 잔고만 보는 노인이 된다.
작가 성이사는 며칠 전 투자자 성이사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통장 잔고만 보는 노인은 부자가 아니야. 부자처럼 사는 노인이지.
부자처럼 사는 것 그것은 잔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루틴에서 온다. 일에서 떠난 후에도 자기를 채울 수 있는 취미. 건강을 지키는 운동.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집중의 영역. 이 세 가지가 루틴의 구성 요소였다.
이 다중우주에서 그 세 가지 루틴을 각각 담당하는 페르소나가 슈퍼 성이사와 작가 성이사였다.
슈퍼 성이사는 몸의 루틴을 지킨다. 비 오는 날에도 계단을 오르고, 30도가 넘는 여름에도 새벽 6시에 일어나 한강으로 나간다. 7년의 누적이 그를 지탱한다.
작가 성이사는 정신의 루틴을 지킨다. 매주 주말 낡은 맥북에 이불을 씌우고 자판을 두드린다. 글이 누구에게 읽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쓰는 행위 자체가 자기를 지탱한다.
이 두 페르소나가 없다면, 성이사와 투자자 성이사가 아무리 셀프 맞벌이로 자본을 쌓아도 인생은 잔고의 풍경에 그칠 것이다. 두 루틴이 있기에 자본은 살아 있는 자본이 된다.
작가 성이사는 노트북 화면을 봤다. 2,400자. 평소 한 편의 글보다 길었다.
오늘은 거기서 끝내기로 했다. 결론은 단순했다.
내가 왜 이 다중우주에서 중요한가.
나니까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나니까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작가 성이사는 본인의 존재에 대해 철학적으로 정리했다. 직장인 성이사, 투자자 성이사, 슈퍼 성이사 — 이 셋이 다중우주를 움직이는 페르소나라면, 작가 성이사는 다중우주를 해석하는 페르소나였다. 움직이는 것과 해석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었다. 둘 다 필요했다.
캔맥주 두 번째 캔을 따려다가 — 잠시 멈췄다.
투자자 성이사: (어디선가) "두 캔째야."
작가 성이사: "오늘은 철학적 정리를 한 날이야. 보상받아도 돼."
투자자 성이사: "그 보상이 이번 주만 7번째인데."
작가 성이사: "철학은 매일 발생해."
투자자 성이사: "...너는 진짜 모든 걸 철학으로 정당화한다."
작가 성이사: "그게 작가의 일이야."
슈퍼 성이사: (어디선가 끼어들며) "근데 진짜 좋은 정리이긴 했어. 셀프 맞벌이라는 단어 — 그거 진짜 새로운 단어인가? 누가 먼저 만들었어?"
작가 성이사: "내가 방금 만들었어."
슈퍼 성이사: "...그거 너의 시그니처 멘트야."
작가 성이사: "시그니처는 시그니처여야 시그니처가 돼."
투자자 성이사: "그 문장은 또 무슨 뜻이야."
작가 성이사: (두 번째 캔을 따며) "어, 그건 다음 글에서 설명할게."
슈퍼 성이사: "또 미루는 거지?"
작가 성이사: "미루는 게 아니라 연재하는 거야."
투자자 성이사: "그거나 그거나."
프쉬.
토요일 오후. 거실 시계 4시 47분. 베란다 너머로 햇볕이 더 비스듬해졌다. 한로로의 인트로가 이어폰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낮맥의 두 번째 캔. 작가 성이사의 낮잠이 곧 시작될 것이다. 낮잠은 철학적 정리에 대한 자기 보상의 의식이었다.
이런 느슨함과 느긋한 시간이 — 때로는 성이사의 다중우주에도 필요하다.
매주 임원 회의의 부엉이 눈썹과 AI 전환율 보고, 코스피 8,000의 미끄럼틀, 30도의 한강 라이딩 사이에서 이 토요일 오후의 낮맥 한 캔과 낮잠이 다중우주의 정신적 안전판이었다.
직장인 성이사가 경제적 안전판을 책임진다면, 작가 성이사는 정신적 안전판을 책임진다. 두 안전판이 모두 있어야 다중우주는 흔들리지 않는다.
낭만은 짧고, 인생은 길다. 그러나 맥주는 차갑고, 토요일 오후는 지금이다.
낮잠 사이로,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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