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30. 09:11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7시 17분. 슈퍼 성이사가 현관문을 열었다.
5월 말. 저녁 7시인데 햇볕이 아직 거리 위에 비스듬히 남아 있었다. 한낮의 30도가 한 풀 꺾여 28도 정도. 살갗에 닿는 공기가 덥다가 아니라 따뜻하다에 가까웠다. 견딜 만한 온도.
성이사가 6시 17분에 퇴근해서 거실 소파에 털썩 앉으면, 7시쯤 슈퍼 성이사가 바톤을 받는다. 이것이 평일의 표준 루틴이었다.
오늘도 같은 순서.
성이사는 회의실 두 곳, 슬랙 메시지 47건, 클로드 코드 토큰 280K, 그리고 임원은 정류장이다라는 깨달음 한 줌을 남기고 퇴근했다.
이제는 슈퍼 성이사의 시간이었다.
겨울이라면 이 시간 현관을 나서는 것이 작은 전쟁이었다.
집안의 따뜻한 온기를 뒤로하고 현관문을 열면, 피부가 비명을 지른다. 특히 손끝과 발끝이 시리다. 얼리는 통증과 베이는 통증의 중간 어디. 러닝화 밑창도 얼었는지 딱딱해진다. 눈이라도 오면 슈퍼 성이사는 뒤뚱뒤뚱 걷는 펭귄이 된다.
여름이라면 반대 풍경이었다.
집안의 에어컨 공기를 뒤로하고 나가면 몸이 녹아드는 감각. 5분도 안 되어 땀이 흐른다. 땀은 흘러넘쳐 뚝뚝 떨어진다. 러닝복을 적시고, 양말까지 내려온다.
집에 들어올 때 러닝 벨트에 챙겨 넣은 수건이 없으면, 와이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현관 매트를 다 적시지 말라는 그 호령이, 슈퍼 성이사가 7년의 러너 생활에서 가장 자주 들은 잔소리 중 하나였다.
그런 여름이 드디어 다시 왔다.
오늘 코스. 집 앞 한강천 → 잠수교 방향 5km → 다시 집. 총 10km.
7시. 햇볕이 한 톤 더 꺾였다. 한강천 자전거 도로에 그늘이 길게 떨어졌다. 그늘 안을 골라 달리면 아직 견딜 만했다.
기승을 부리던 날파리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며칠 전부터 잠자리가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잠자리는 날파리의 천적이었다. 잠자리가 한강천 위를 정연하게 비행하기 시작하면, 날파리들이 귀신같이 사라졌다.
자연의 작은 질서가 슈퍼 성이사의 코스에 7년째 같은 순서로 도착했다. 6월 초 잠자리. 7월 매미. 8월 매미의 최정점. 9월 잠자리의 마지막. 10월 코스모스. 그리고 11월의 첫 입김. 슈퍼 성이사는 이 자연의 달력을 몸으로 외우고 있었다.
1km 지점. 슈퍼 성이사는 어제의 기록과 싸우는 중이었다.
가민의 평균 페이스가 5분 27초/km에 도달했다. 어제는 5분 31초/km. 4초 빠른 페이스. 이 정도면 오늘 10km를 54분대 후반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슈퍼 성이사의 머릿속은 기록만 굴러가지 않았다.
평일 저녁 러닝의 가장 큰 보너스는 성이사의 회사 일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1km 지점을 지나면 슬랙 메시지 47건이 사라진다. 2km 지점에서는 임원은 정류장이다라는 깨달음이 흐릿해진다. 3km 지점에서는 김부사장과 정실장의 언쟁이 남의 이야기가 된다.
오로지 다음 발걸음만 남는다.
이것이 슈퍼 성이사가 7년 동안 반드시 매일 하는 의식의 본질이었다. 회사를 끌고 들어오지 않는 시간. 명치의 동전이 호흡과 다리에 의해 천천히 가벼워지는 시간.
5km 반환점.
잠수교 부근의 익숙한 벤치 옆에서 슈퍼 성이사는 잠시 멈춰 보온병의 미온수를 한 모금 마셨다. 한강 너머로 원베일리의 야경이 켜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름 초입의 한강 저녁 풍경. 7시 47분. 자전거 라이더들이 형광 헬멧을 쓰고 빠르게 지나갔다. 보드를 타는 청년들도 있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데이트 중인 커플. 그리고 슈퍼 성이사처럼 혼자 뛰는 러너들.
7년 전 처음 한강천에서 50미터 만에 과호흡이 와서 멈췄던 그 사람이 지금은 매일 10km를 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변화의 거리가 5km 반환점에서 가장 명확하게 느껴졌다.
다시 집 방향. 두 번째 5km.
이 구간이 슈퍼 성이사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었다.
회사의 일은 이미 1km 지점에서 빠져나갔다. 어제의 기록도 5km 반환점에서 이겼다. 남은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뿐이었다.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하지만, 머리는 가벼워진다. 이 비대칭이 러닝의 가장 큰 보상이었다.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 슈퍼 성이사는 다음 주말 라이딩 코스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했다.
토요일 한강 60km 라이딩. 6시 출발. 8시 30분에 보급 포인트(반포·잠원). 10시 30분 집 도착. 맥도날드 런치 메뉴로 점심.
일요일 한강천 10km 러닝. 6시 출발. 7시 30분 집. 공복 러닝 후 바나나 + 아이스 아메리카노.
여름의 주말 일정은 — 거의 고정된 의식이었다. 5월 말이 이렇게 따뜻하면, 6월부터는 오전 8시를 넘으면 달릴 수가 없다. 한낮의 햇볕에 몸이 흡혈귀처럼 사라진다.
집 도착. 9시 7분. 10km, 57분 14초.
샤워하고 거실로 나오자 작가 성이사가 식탁 옆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펴 놓고. 옆에는 맥주 캔 한 캔. 이번 주 두 번째 캔이었다.
슈퍼 성이사는 작가 성이사를 째려봤다.
슈퍼 성이사: "또 마셔?"
작가 성이사: "어. 오늘은 모자무싸 마지막 회야. 마무리는 한 캔으로 해야지."
슈퍼 성이사: "올해 건강검진 한 달 남았다. 작년 말에 비해 3kg 쪘어."
작가 성이사: (태연하게) "알아."
슈퍼 성이사: "그러니까 좀…"
작가 성이사: (말을 자르며) "여름은 또 더우니까 마실 거지?"
슈퍼 성이사: (예상했던 답을 듣고) "야."
작가 성이사: "봄은 봄이어서 마시고, 여름은 더우니까 마실 거지?"
슈퍼 성이사: "야!"
작가 성이사: "당연하지."
거실의 노트북 옆 모니터에 모자무싸 마지막 회가 일시정지되어 있었다. 박해영 작가의 대사 한 줄이 화면 가운데에 얼어붙어 있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슈퍼 성이사는 그 화면을 잠시 봤다. 의자에 앉으려다 멈췄다.
슈퍼 성이사: "야, 근데… 이 드라마 제목이 뭐였지?"
작가 성이사: "모자무싸.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슈퍼 성이사는 잠시 그 제목을 곱씹었다. 오늘 회사에서 성이사가 가져온 임원은 정류장이다라는 깨달음과, 이 제목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슈퍼 성이사: "다중우주의 모두가 자기 무가치함과 싸우는 거 아니야?"
작가 성이사: (눈을 들지 않고) "직장인 성이사는 회사 안에서 싸우고. 투자자 성이사는 시장에서 싸우고. 너는 다리에서 싸우고. 나는 — 백지에서 싸우고."
슈퍼 성이사: "너는 백지에서도 싸우면서 맥주는 매번 이기네."
작가 성이사: "그건 백지가 너무 강해서 마시는 거야."
슈퍼 성이사: "맥주가 백지를 이기는 건 아니지 않냐?"
작가 성이사: "맥주는 백지와 함께 견디는 거야."
슈퍼 성이사는 잠시 작가 성이사의 답에 말을 잃었다. 평소 같으면 말장난으로 받았을 텐데, 오늘은 말장난이 아닌 정도의 무게가 답에 있었다.
슈퍼 성이사는 그냥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한 잔. 거실로 돌아와 작가 성이사 맞은편에 앉았다.
거실 시계 9시 47분. 모자무싸 마지막 회가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슈퍼 성이사는 작가 성이사가 모자무싸를 보는 동안, 옆에서 가민 데이터를 정리했다. 오늘의 러닝 기록. 평균 페이스. 케이던스. 심박. 칼로리 747kcal.
슈퍼 성이사: (혼잣말) "747kcal 태웠으니까 맥주 한 캔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닌가."
작가 성이사: (드라마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건 내 논리야."
슈퍼 성이사: "야!"
작가 성이사: (여전히 화면을 보며) "둘 다 다중우주야. 합리화도 우주의 일부야."
거실 한쪽에서는 작가 성이사가 모자무싸를 보며 백지와 맥주의 균형을 잡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슈퍼 성이사가 가민 데이터를 정리하며 러닝과 맥주의 균형을 합리화했다.
이 두 페르소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우주를 견디고 있었다.
운동하는 몸과 마시는 몸. 다리로 견디는 사람과 손가락으로 견디는 사람. 그 둘이 — 거실 식탁의 양 끝에 앉아 있는 5월 말의 어느 평일 저녁이었다.
아침에는 뇌, 저녁에는 몸.
그 사이에 주말 저녁의 맥주가 있다.
이것이 슈퍼 성이사가 7년 동안 정착시킨 다중우주 시간표의 핵심이었다.
거실의 모자무싸가 엔딩 크레딧에 도달할 즈음, 작가 성이사가 노트북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슈퍼 성이사는 그 동작을 봤다. 주말 글쓰기가 시작되는 신호였다. 평일이지만, 오늘은 모자무싸 마지막 회를 본 직후의 특별한 글쓰기였다.
슈퍼 성이사는 자리를 비켜주고, 거실 소파로 옮겨 앉았다. 이제 작가 성이사의 시간이다. 슈퍼 성이사는 가만히 작가가 자판을 두드리는 클릭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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