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월급

2026. 6. 6. 09:25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코스피가 8천을 넘었다.

투자자 성이사의 투자 대시보드 첫 화면이 온통 빨강이었다. 한국 시장에서 빨강은 상승이다. 보유 종목의 수익률이며칠째 신기록을 갱신했다. 특히 반도체 종목 하나가 압도적으로 올랐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기분이 좋을수록, 불안이 더 커졌다.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투자자 성이사는 닷컴 버블도, 2008년도, 코로나도, 전쟁 초반도 다 겪은 사람이었다.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었다. 빨강이 길어질수록, 그 다음의 파랑이 깊어진다.

투자자 성이사는 결정했다. 당분간 주식은 관망한다. 더 사지 않고, 현금성 자산을 확보한다. 조정장이 오면 그때 추가 매수한다. 8천의 불장에서 추격 매수하는 것은, 평생 배운 원칙에 어긋났다.

투자자 성이사가 주식을 관망하는 진짜 이유는 직장인 성이사 때문이었다.

직장인 성이사가 언제 퇴사하게 될지 모른다. 자칫 그 퇴사가 은퇴가 되어버린다면 이후 성이사 가족의 다중우주를 지탱할 것은 구조 설계의 안전판이었다. 주식 투자. 퇴직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은 개인연금과 IRP를 별도로 굴렸다. TDF, S&P 500, 코스피 200, 배당 다우지수로 안정적으로 운용했다.

40대 중반만 해도 성이사는 이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퇴직연금이 뭔지도, 국민연금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그저 회사가 떼어가고 넣어주는 어떤 숫자였을 뿐이다.

그런데 다중우주의 세계로 세계관이 바뀌면서, 투자자 성이사라는 페르소나가 자라면서, 성이사는 자산 운용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많지 않지만,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이 모든 변화의 씨앗이 오래전 그 여름의 책 한 줄이었다. 경제적 안전판이 있어야 선택이 자유로워진다.

주식과 퇴직연금을 관망하던 어느 저녁. 투자자 성이사는 간만에 국민연금 앱을 열었다.

화면에 65세 예상 수령액이 떴다. 미래의 성이사가 매월 받게 될 국민연금. 그 숫자 옆에 가입자 본명이 작게 적혀 있었다. 성동안. 회사에서는 14년간 성이사로 불렸지만, 국민연금 앱은 그를 성동안이라고 불렀다. 시스템은 직책을 모른다. 본명만 안다. 그 숫자를 보며, 투자자 성이사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래의 나가, 화면 안에 본명으로 들어 있었다.

메뉴를 둘러보다가 처음 보는 항목을 발견했다.

국민연금 추가 납부 (추납)

투자자 성이사는 추가 납부할 게 없을 줄 알았다. 직장 생활 내내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냈으니까. 그런데 클릭해보니, 추가 납부 가능 기간 38개월이라는 정보가 떴다.

38개월.

내역을 살펴보니 군 복무 26개월과 국민연금을 내지 않았던 12개월의 합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잠깐 일을 쉬었던 그 12개월. 그리고 군대에 있던 26개월. 그 기간을 지금의 소득 기준으로 추가 납부하면, 65세의 성이사가 매월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투자자 성이사는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먼저 지선생(GPT)에게 물었다.
투자자 성이사:
현재 성이사의 소득 수준에서 국민연금 38개월(군 복무 26개월 + 미납 12개월)을 추가 납부하는 것과, 같은 금액을 주식에 투자하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유리한가요? 65세 수령액 기준, 그리고 세금 효과까지 포함해서 비교해주세요.

지선생의 답이 나왔다.

38개월치를 일시불로 납부하면 내년 65세 시점에 성이사가 받을 국민연금이 매월 약 10만 원 더 늘어난다. 거기에  추가 납부액은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 대상이라, 내년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상당히 돌려받을 수 있다.

지선생의 결론: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국민연금은 사망 시까지 평생 받는다. 매월 10만 원이 더 늘어난다는 것은, 65세부터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25년간 매월 10만 원. 단순 합산만 3천만 원. 게다가 물가 연동으로 매년 오른다. 일시불 납부액 대비 수익률로 환산하면 어떤 주식도 따라올 수 없는 안정적 수익이었다.

투자자 성이사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문제는 지금이 불장이라는 것이었다. 보유한 반도체 종목이 매일 신고가를 갱신하고 있었다. 이번 주에는 젠슨 황의 한국 방문 소식으로 시장 전체가 들떠 있었다. 주식은 더 오를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을 팔아 국민연금에 넣는다는 것은, 투자자 성이사의 야수의 심장이 거부하는 일이었다. 조금만 더 들고 있으면 더 오를 텐데. 지금 파는 건 손해 아닌가.

투자자 성이사는 교차 검증을 하기로 했다. 같은 질문을 클선생과 제선생에게도 던졌다.

 

투자자 성이사:
(클선생과 제선생에게 각각 동일 질문)
불장에서 반도체 종목을 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종목 일부를 팔아 국민연금 38개월 추가 납부에 쓰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세 AI 선생의 답이 모두 일치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평소 세 AI는 미묘하게 다른 의견을 냈다. 클선생은 신중했고, 제선생은 데이터 중심이었고, 지선생은 실용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 선생이 완전히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국민연금 추가 납부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이유는 세 가지로 모였다.

첫째, 국민연금은 확정된 미래다. 주식은 불확실한 현재다. 65세의 성이사가 받을 연금은 시장이 어떻게 되든 평생 보장된다. 반면 반도체 종목은 내일 떨어질 수도 있다.

둘째, 세금 효과. 추가 납부액의 소득공제는 즉시 현금으로 돌아오는 확실한 수익이다.

셋째, 심리적 안전판. 직장인 성이사가 언제 은퇴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평생 받는 연금을 늘리는 것은 다중우주 전체의 불안을 줄인다.

투자자 성이사는 결정했다.

이번 주, AI로 한껏 들떠 있던 반도체 종목 한 종목을 전액 매도하기로. 그 돈으로 국민연금 38개월을 추가 납부하기로.

매도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잠시 멈췄다.

이게 새옹지마가 될지, 아닐지는 모른다.

어쩌면 이 종목이 다음 주에 더 올라서, 팔지 말 걸 하고 후회할 수도 있다. 어쩌면 다음 주에 조정장이 와서, 잘 팔았다 하고 안도할 수도 있다. 미래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현재의 투자자 성이사가, 미래에 자기 이름으로 살아갈 성동안에게 보내는 쌈지돈.

오래전 시리즈가 시작될 때부터, 성이사의 다중우주에는 한 가지 약속이 있었다. 언젠가 경제적 자유가 완성되면, 성이사는 회사의 가면을 벗고 자기 본명으로 산다. 그 미래의 성동안에게 지금의 투자자 성이사가, 평생 받을 연금 한 줄을 더 보태주는 것이었다.

매도 버튼을 눌렀다. 딸깍.

불장의 한 종목이미래의 연금으로 바뀌었다.

투자자 성이사는 매도 체결 알림을 확인하고, 국민연금 추가 납부 신청을 했다. 38개월.

신청 완료 버튼을 누르기 전에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65세의 그에게.

지금의 투자자 성이사는 50대다. 매일 시장을 보고, 매일 불안하고, 매일 야수의 심장과 데이터의 머리 사이에서 싸운다. 그런 그가, 15년 후의 자기에게 무언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고도 따뜻한 일이었다.

15년 후의 그는  회사의 가면을 벗었을 것이다. 성이사가 아니라 성동훈으로 불릴 것이다. 매일의 불안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매월 오늘의 투자자 성이사가 보낸  몇 만 원을 더 받을 것이다.

투자자 성이사는 신청 완료 버튼을 눌렀다.

미래의 그에게.
오늘의 내가, 작은 쌈지돈을 보냅니다.
그때쯤이면 당신은 더 이상 불안하지 않기를.

거실 모니터의 클로드 코드 토큰 잔량이, 오늘도 천천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 옆에서 투자자 성이사가 미래로 부친 연금 한 줄이, 조용히 처리되고 있었다.

 

<투자자성이사가 국민연금 추가 납부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