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성이사의 김칫국

2026. 6. 13. 08:31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투자자 성이사는 마츠다 상무의 농담 한마디에 김칫국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월드마켓이 투자한다면. 그 가정 하나가 머릿속에서 눈덩이처럼 커졌다. 만약 글로벌 1위 유통 거인이 석테크홀딩스에 투자한다면, 회사는 한국의 중소 상장사에서 글로벌 기업이 투자한 회사로 한 단계 올라선다. 그 한 단계가 주가에 어떻게 반영될지, 투자자 성이사는 이미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매일 회사의 가치를 주식으로 환산하는 사람답게, 투자자 성이사는 석테크홀딩스의 현재 시가총액부터 확인했다.

시총 1천 8백억.

최근 코스닥 시장의 붕괴로, 석테크홀딩스의 주가는 작년 대비 반토막이 나 있었다. 빨간 숫자가 길게 이어지던 시절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파란 숫자가 화면을 덮고 있었다.

 

투자자 성이사는 상상했다. 월드마켓의 투자가 진행되면, 회사 가치는 적어도 다섯 배까지 오를 수 있다. 시총 1천 8백억이 9천억으로. 그 달콤한 숫자가 머릿속에서 점점 부풀었다.

 

이 대목에서 투자자 성이사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냈다.

석테크홀딩스의 상장 과정. 그때 회사의 IR을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성이사였다.

석대표와 CFO 최이사가 거래소와 금감원 심사를 받는 동안, 성이사는 회사의 비전과 IR을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작은 중소기업이 상장사로 올라서던 그 과정에서, 성이사는 1등 공신이었다. 수많은 밤을 새웠다. 투자 설명회를 돌고, 기관 투자자를 만나고, 회사의 미래를 한 장의 자료로 압축했다. 그리고 회사가 상장되던 날, 성이사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큰 자부심 하나를 가슴에 새겼다.

상장의 보상으로, 성이사는 회사 주식을 옵션으로 배정받았다. 임원이 된 후에는 사재를 털어 자사주를 추가로 매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주가는 상장가 기준 3천억을 한참 밑돌고 있었다. 옵션으로 받은 주식과 임원으로서 추가 매입한 비용을 모두 합치면, 투자자 성이사의 자사주 계좌는 마이너스였다.

투자자 성이사는 자사주 잔고를 볼 때마다 씁쓸했다.

자기가 가장 큰 자부심을 느꼈던 그 회사의 주식이, 자기에게 가장 큰 손실을 안긴 종목이 되어 있었다.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과 주가를 보는 냉정함이 매번 충돌했다. 그 충돌의 자리에 늘 씁쓸함이 고였다.

 

그런 자사주에, 월드마켓의 투자라는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투자자 성이사의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하나는 자기 주식이 오른다는 기쁨. 다른 하나는 자기가 상장시킨 회사의 가치가 다시 올라간다는 기쁨. 이 두 가지가 겹치자, 투자자 성이사의 기분은 우주로 날아갔다.

 

이 모습을 본 작가 성이사가 일침을 가했다.

"투자가 그렇게 쉽게 되면, 너나 나나 다 받지. 왜 혼자 김칫국을 마시냐?"

투자자 성이사는 평소의 냉철함을 잠시 내려놓고 받아쳤다.

"그래도 빅스의 마츠다 상무가, 빈말이라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잖아. 왜 너는 내 상상을 방해하냐? 오히려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지금 이 상황을 같이 즐겨줘야 하는 거 아니야?"

 

작가 성이사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작가도 현실을 산다. 적당히 하고, 현실 세계로 내려와라."

투자자 성이사는 입을 다물었다. 평소에는 자기가 작가 성이사에게 현실을 가르치는 쪽이었는데, 오늘은 정반대였다. 가장 냉정한 페르소나가 가장 들뜨고, 가장 낭만적인 페르소나가 가장 차가웠다.

 

다중우주의 역할이 잠깐 뒤바뀐 저녁이었다.

 

투자자 성이사는 김칫국을 한 모금 더 마시려다, 작가 성이사의 마지막 한마디에 잔을 내려놓았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다. 투자가 그렇게 쉽게 결정되는 일이었다면, 세상 모든 회사가 투자를 받았을 것이다. 마츠다 상무의 농담은 농담이고, 나디아가 시가총액을 알아본 것은 그저 기본 절차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투자자 성이사는 그 작은 가능성마저 버리지 않기로 했다. 오래전 자기가 밤을 새워 상장시킨 회사. 그 회사의 자사주가 마이너스인 채로 잠들어 있는 계좌. 거기에 다시 빛이 들어올 수 있다는 상상은, 손실의 씁쓸함을 잠시나마 덮어주는 약이었다.

투자자 성이사는 자사주 잔고 화면을 한 번 더 봤다. 마이너스. 그러나 오늘은 그 빨간 마이너스가, 평소만큼 무겁지 않았다.

상상은 공짜였고, 가끔은 그 공짜 상상이 하루를 버티게 했다.

 

<투자자성이사는 자사주의 떡상을 상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