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3. 10:14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작가 성이사에게는 토요일의 루틴이 있다. 주말 아울렛 방문이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아침 일찍 슈퍼 성이사가 달리기나 라이딩을 마치고 들어오면, 그 다음은 작가 성이사의 시간이었다. 작가 성이사는 혼자 또는 그의 아내와 차를 끌고 아울렛으로 향한다.
딱히 살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을 관찰하고, 좋아하는 브랜드의 가격을 조사한다. 그러다 가격이 착하게 나온 제품이 있으면 하나씩 산다. 직장인 성이사가 사회생활에 입을 옷 한 벌. 슈퍼 성이사가 신을 가격 좋은 운동복과 러닝화 한 켤레. 대부분은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많지만, 그래도 작가 성이사는 아울렛 방문을 멈추지 않았다.
아울렛에서 작가 성이사가 보는 것은 물건이 아니었다. 계절의 변화. 사람들의 행동. 브랜드의 마케팅과 가격 전략. 그것이 작가 성이사의 관찰 노트였다.
간혹 가격을 조사하다 보면, 투자자 성이사가 안에서 끼어들었다. 이 브랜드 주가가 요즘 어떻고, 이 옷 가격 변동이 실적과 어떻게 연결되고,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작가의 눈과 투자자의 눈이 같은 매대 앞에서 만나는 순간이었다.
작가 성이사는 10년 넘게 이 루틴을 이어왔다.
주말에 별일이 없으면 아울렛을 갔다. 그러다 가끔, 이렇게 여유 있는 주말과 원하는 제품을 살 수 있는 소비력이 있다는 사실에 묘한 기쁨을 느꼈다. 큰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것을 망설임 없이 살 수 있다는 그 감각이, 작가 성이사에게는 작은 자유의 증거였다.
마지막으로 작가 성이사는 아울렛에서 수제맥주를 한 병 사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을 먹고 돌아온다. 그것이 작가 성이사의 토요일 루틴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가 운전석 옆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 요즘 목표가 조기 은퇴잖아. 근데 은퇴하면 더 이상 이런 여유를 못 즐기지 않을까? 여행도 그렇고."
작가 성이사는 그 말에 맥락없이 갑자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가 떠올랐다.
검은 형체에 가면을 쓴 존재. 금을 내밀어 사람을 홀리고, 그러다 결국 사람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존재. 작가 성이사는 회사와 가오나시를 겹쳐 보았다.
직장인 성이사는 성이사의 다중우주를 위해 매달 가오나시가 내미는 돈을 받고 있다. 월급이라는 이름의 금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가오나시에게 삼켜질 것이다. 회사라는 가오나시는, 월급을 미끼로 사람을 붙잡아두고, 결국 그 사람의 시간을 통째로 먹는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삼켜지지 않으려고, 자체 수익을 만드는 것이 투자자 성이사였다. 그는 가오나시에게 먹히는 대신, 자기 금융 소득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한다. 슈퍼 성이사는 가오나시에게 먹히기 전에 도망갈 수 있는 체력을 키운다.
그러다 작가 성이사는 한 가지를 깨닫고 섬뜩해졌다.
가오나시의 먹이는 직장인의 월급이다. 먹히는 것은 직장인 성이사다. 그런데 그 월급을 가장 많이 쓰는 주체는, 정작 직장인 성이사가 아니었다. 아울렛에서 옷을 고르고, 여행을 다니고, 수제맥주를 사는 사람. 바로 작가 성이사 본인이었다.
직장인 성이사가 가오나시에게 먹히며 벌어온 돈을, 작가 성이사가 가장 신나게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오나시에게 잠식되어 가는 것은 직장인 성이사만이 아니었다. 그 돈에 길들여진 작가 성이사 자신도, 천천히 가오나시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작가 성이사는 아내에게 호기롭게 답했다.
"이 정도는 조기 은퇴를 해도, 투자자 성이사의 투자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성이사의 다중우주 안에서 투자자 성이사가 즉각 끼어들었다.
"지금 너의 씀씀이로는 내 투자가 의미가 있겠냐? 좀 아껴 써라."
아내가 한마디 더 보탰다.
"투자와 배당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지금 구조로는 뭔가 아쉽지 않을까? 적어도 최소한의 노동 소득은 있어야, 당신도 할 일이 있고 건강하지 않을까?"
작가 성이사는 호방하게 답했다.
"음, 내가 조기 은퇴하면 열심히 글 써서 먹고 살 수 있을 거야."
아내가 웃었다.
"당신 소설을 누가 본다고."
작가 성이사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회사와 가오나시가 겹쳐 보였고, 섬뜩함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점점 나는 가오나시에게 잠식되어 가는 건 아닐까. 월급의 단맛에 길들여져, 그 단맛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그때 성이사의 다중우주 안에서 직장인 성이사가 한마디 했다.
"그나마 직장 스트레스를 소비로 풀지 못하면, 가오나시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스트레스로 먼저 죽을 수도 있다. 너무 연연해 하지 마라."
작가 성이사는 그 한마디에서 다시 정신승리의 명분을 얻었다.
그는 아내에게 한번 더 너스레를 떨었다.
"직장인 스트레스는 소비가 약이야. 그리고 두고 봐. 내가 작가로서 근로 소득을 버는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
성이사의 다중우주 안에서, 직장인 성이사와 투자자 성이사와 슈퍼 성이사가 동시에 체념한 듯 한마디씩 보탰다.
"제발 그래라."
차는 아울렛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뒷좌석에는 수제맥주 한 박스와, 슈퍼 성이사를 위한 가격 착한 러닝화 한 켤레가 실려 있었다. 가오나시의 금으로 산 물건들이었다. 작가 성이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여름 초입의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먹히지 않으려면, 먹히기 전에 자기 이름으로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직장인 성이사가 벌고, 투자자 성이사가 굴리고, 슈퍼 성이사가 버티는 동안, 작가 성이사는 자기 이름으로 살아남을 글을 써야 한다.
조기 은퇴라는 아내의 질문은, 사실 그 질문이었다. 너는 가오나시 없이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질문.
작가 성이사는 아직 그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언젠가 그 답을 글로 쓰게 될 것이라는 예감만이, 여름 초입의 차 안에 조용히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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