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3. 09:52ㆍ성이사의 다중우주 - 일상 에피소드
짝수해의 건강검진이 돌아왔다.
성이사는 해마다 과체중으로 잡혔다. 고혈압과 고지혈로도 고생했다.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을 때마다, 빨간 글씨로 표시된 항목들이 한 해의 성적표처럼 부끄러웠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슈퍼 성이사가 한 해 동안 관리한 결과, 작년 대비 몸무게를 10킬로그램 감량했다. 건강 관리도 어느 때보다 철저했다. 그래서 올해 건강검진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정상 판정. 빨간 글씨 없는 결과지. 슈퍼 성이사는 그 그림을 머릿속에 그렸다.
성이사의 다중우주에서 건강을 책임지는 슈퍼 성이사에게, 올해 진짜 걱정은 몸무게가 아니었다. 올해 처음 받는 대장내시경이었다.
지금까지 위내시경은 수면으로 매번 받아왔다. 그러나 대장내시경은 처음이었다.
슈퍼 성이사는 건강검진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건강검진 예약을 하려고 합니다."
신분 확인 후, 병원에서 물었다.
"언제로 원하세요?"
"가급적 빠르게, 아침 1차로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에서 7월 일정을 알려주며 한 가지를 확인했다.
"과거처럼 위내시경만 하시나요? 이제 50대를 넘으셨으니 대장내시경까지 하시는 게 어떠세요?"
슈퍼 성이사는 대장내시경까지 받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병원에서 한 가지를 덧붙였다.
"대장내시경을 받고 용종이 발견되면, 2주간 비행기를 타실 수 없습니다. 부득이한 경우라면 일정을 조정하셔야 해요. 다만 일정은 뒤로 갈수록 사람이 몰려서 잡기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슈퍼 성이사는 그 순간 두 가지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나는 대장내시경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처음 받는 검사. 혹시 잘못되면 어쩌지. 용종이 나오면 어쩌지.
다른 하나는 출장 이슈였다. 지금 성이사가 월드마켓과의 일이 한창 잘 풀리고 있었다. 에드워드 부사장이 한국 방문을 이야기했고, 마츠다 상무가 투자 가능성까지 농담으로 던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용종이 발견되어 2주간 비행기를 못 타게 되면, 도쿄든 어디든 출장에 차질이 생긴다.
건강을 챙기려는 검사 하나가, 일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역설. 슈퍼 성이사는 잠시 그 역설 앞에서 머뭇거렸다.
오후가 되자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식이조절 안내가 왔다.
검사 3일 전부터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이 길었다. 과일, 견과류, 오이, 고추, 고구마, 김, 미역, 다시마, 깨, 콩, 옥수수, 현미, 잡곡. 씨앗이 있거나 섬유질이 많은 것은 전부 금지였다. 그리고 장세정제를 받으러 오라는 안내가 따라왔다.
슈퍼 성이사는 장세정제를 검색해봤다. 오라팡정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후기를 읽어보니, 검사 자체보다 장을 비우는 과정이 더 고통스럽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화장실을 수도 없이 들락거린다는 후기, 맛이 고역이라는 후기, 밤새 잠을 못 잤다는 후기가 줄줄이 이어졌다.
슈퍼 성이사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받아야 할 검사라면, 받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낫다. 닥치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일정대로 진행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7년간 한강을 달리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미리 겁먹고 멈추는 것보다 일단 출발선에 서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첫 10킬로미터를 뛰기 전에도, 첫 하프마라톤을 앞두고도, 동해안 국토종주의 첫 업힐 앞에서도, 슈퍼 성이사는 늘 겁부터 먹었다. 그리고 늘 끝내 완주했다.
걱정을 내려놓는 순간, 작가 성이사가 눈에 띄었다.
마침 주말 저녁이라 맥주 캔을 따고 있었다. 프쉬, 하는 소리. 슈퍼 성이사가 한마디 했다.
"야. 나는 항상 건강하게 살려고 하는데, 너가 문제야. 매번 그렇게 감성 쫓아서 술을 마시니, 건강이 안 좋을 수밖에 없잖아."
작가 성이사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툭 던졌다.
"내가 있어서 너가 더 열심히 운동하는 거야. 나마저 건강하게 살면, 너 운동하는 보람이 없잖아."
슈퍼 성이사는 할 말을 잃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작가 성이사는 자기 음주를 슈퍼 성이사의 운동 동기로 둔갑시켰다. 궤변인데, 묘하게 반박하기 어려운 궤변이었다.
대장내시경의 공포와, 오라팡정의 고역과, 용종의 불안이 잠시 가벼워졌다. 다중우주의 만담은, 가끔 그 어떤 약보다 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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