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게이트웨이 제 6장

2025. 2. 14. 16:43사일런트 게이트웨이(창작 웹소설)

제 6장. 동맹과 의심, 그리고 문을 여는 열쇠

아파트 현관 앞은 을씨년스러운 정적에 잠겨 있었다. 하민과 이진영 박사는 몇 초간 시선을 교환했다. 한쪽은 절박한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다른 한쪽은 그에 대한 경계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머금은 채였다. 현관 앞 센서 등은 몇번이고 그들의 침묵속에 몇 번이나 켜졌다가 꺼졌다. 두 사람 사이에 감돌고 있는 기운은 도무지 일상적이지 않았다.


한참동안 둘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애견이 현관 앞에서 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계속 들리자 그녀가 체념한 듯 말을 시작했다.
“시공간 전이 연구는 사실상 극비라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일단 집으로 들어와요.”
그녀는 현관문을 열어 하민을 집 안으로 들였다.

아파트 문을 열자마자 그녀의 흰 말티즈 강아지가 그녀에게 뛰어 올랐다. 내부는 간소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군사시설에서 일하는 연구원의 집이라면 딱 이럴 법했다. 서류뭉치 몇 개와 노트북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문을 잠그고 애완견을 쓰다듬고 저녁을 챙겨주었다. 멋쩍은 하민은 거실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맞은편 테이블에 앉으며 노트북을 부팅했다. 

“한마디로, 과거로 돌아갈 때 필요한 동력과 제어 장치, 그리고 실제로 ‘타임워프’를 실행할 프로토콜이 있죠. 그 장치는 사일런트 게이트웨이 내부에 있고, 저와 마이클 김 박사의 ‘이중 승인’으로만 가동할 수 있어요. 당신 말대로 저는 오랫동안 이 프로젝트를 위해 살아왔고 전 인류가 사라질 지금도 솔직히 이 프로젝트의 결과를 보고 싶어요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절차없이 비밀리에 이런 실험을 한다는 건 비도덕적이고 어렵죠 하지만 생각해 보니 사일런트 게이트웨이 시설에 대한 형식적 시설 보안만 있을뿐 프로젝트와 관계된 군부의 컨트롤 타워도 전쟁으로 붕괴 되었고 돈을 대주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도 전쟁통에 프로젝트를 챙길 여력이 없어요 당사자라고 한다면 저와 마이클 밖에 없는데 아마 그도 저와 같은 생각일껍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그가 승인하면 당신을 대상으로 시설의 보안을 통과하고 타임워프의 최종 실험은 가능 할 겁니다. ”

 

그리고 말없이 노트북을 돌려 하민에게 보여주었다. 거기엔 ‘양자역학을 응용한 시공간 재배열’에 관한 수많은 공식, 그리고 ‘시간여행 시 발생 가능한 역설’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열되어 있었다.

“당신이 보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건 내가 연구해온 결과예요. 단순히 과거로 가는 건 가능해요. 문제는 역설이에요.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완전히 소멸하거나, 다른 형태로 재편될 수 있다는 거죠. 여기서 우리가 아는 현존 세계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해킹을 통해 사일런트 게이트웨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설명을 경청하며, 다소 무거워진 방안 공기를 바꾸려고 주제를 전환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 미래는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지경’까지 와버렸죠. 방사능 낙진, 온난화로 인한 자정 능력 상실, 식량 부족, 끝없는 소규모 분쟁… 이대로 핵폭탄이 몇개 더 터지면 며칠안에 인류 문명 자체가 붕괴할 거라는 게 주류 학계의 예측이잖아요. 그런데 박사님은 어떻게 타임워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가요?”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양자역학 연구를 통해 최종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를 연구했고 논문을 발표했죠 그리고 마이클 박사는 저보다 더 오랫동안 양자역학을 연구했고 인터스텔라, 앤트맨과 와스프,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 영화의 모티브에서 영감을 얻어서 시공간 이동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해요 하하하 발상이 유치하죠"

 

'내가 만난 모든 과학자들은 자기연구에 대한 설명 시간이 되면 언제나 오픈마인드로 변하는 군' 그녀의 웃을 소리에 가능성이 올라갔다고 생각이 든 하민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안심했다.


그녀는 한층 더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그의 연구가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글로벌 빅테크 컴퍼니와 미국의 국방성이 그의 연구를 지원했고 이후 그가 저의 양자역학 연구를 보고 저를 파트너로 선택했어요 당시 저는 뭔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는데 그의 제안이 매우 신선했어요 공상과학 영화를 보고 양자역학을 이용한 시간전이를 실제 시도한다는 발상이 웃기기도 했구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 되었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프로젝트가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그리고 당신은 이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에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처럼 지구를 지키겠다며 오늘 저에게 나타나 손을 든겁니다. 저는 당신의 저돌적인 모습을 보고 인터스텔라의 쿠퍼가 생각이 났어요"


하민은 더욱더 그녀의 흥을 돋구려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그의 집중한 표정을 보고 체념했다는 듯이 깊게 한번 숨을 쉬고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도 영웅 쿠퍼를 만들어 볼까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해보죠 연구결과를 봐야 저도 죽는게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이 자초한 일이니 제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박사님이 말씀 하신 또 한 사람, 마이클 김은 어떻게 할 거죠? 그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면 어렵지 않을까요?”
“그는 저보다 더 실험결과를 받고 싶어 할 것 같아요 어차피 본인이 영감을 받아서 시작한 프로젝트니까요 제가 마이클에게 당신 이야기를 할께요 하지만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저도 몰라요.”

하민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힐끗 보았다. 밤 10시를 넘어가는 시각이었지만, 그녀에게 알고 싶은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녀의 애완견은 이제 지루한 듯 그녀 옆에서 하품을 하고 있었고 그녀는 노트북을 조작했다.


“우리끼리 극비로 개발했던 임시 서브넷이 있는데 백도어 루트로 접속 경로를 알려 드릴테니 필요한 것들은 미리 살펴보세요"


하민은 그녀가 알려준 접속경로로 자신이 보유한 ‘타노스’ AI 코어를 휴대용 단말에 연결해, 그녀가 알려준 백도어 루트를 통해 사일런트 게이트웨이의 자료를 추가로 볼 수 있었다. 임시 서브넷을 통해 접속한 백도어는 네트워크 분리가 되어 하민이 해킹한 자료에 없던 더 자세한 내용들이 있었다.

사일런트 게이트웨이 문서를 분석해 보면, 이 장치는 대체로 ‘10세기 이후’의 시점으로만 타임슬립이 제한된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즉, 인류 문명이 아예 태동하기 전의 구석기 시대나, 예수 탄생 전인 기원전 시대로는 이동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최소한의 역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안전장치였죠. 너무 먼 과거로 가면, 아예 문명 자체가 달라져버려서 통제 불가능이 될 테니까요.”
그녀가 중얼거리듯 설명했다.

하민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생각했다. 10세기~미래 시점 중 어디로 갈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조선 시대 이후로 가면 중앙집권 국가체제가 너무나 공고해지고, 조세 제도·관료 시스템도 이미 고착되어 있어 개혁이 쉽지 않을 터였다.


“당신.. 아니 하민씨 연락 드릴께요 밤이 늦었습니다.”
그녀는 테이블 위의 서류를 정리하며, 다시 한 번 다짐하듯 그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민은 그녀에게 감사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제가 너무 눈치없이 오래 있었네요 그럼 박사님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010-xxxx-xxxx입니다."

하민은 이른 새벽 그녀의 아파트를 나서고 곧장 인근 주차장에 세워둔 SUV로 이동했다.

수 시간 뒤, 그는 자신의 트럭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평선 너머 해가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타노스, 지금부터 대기 모드로 전환하고, 입수한 자료를 잘 살펴보고 필요한 자료는 백업해둬”
"확인했습니다. 수집과 분석을 시작합니다."
타노스의 음성이 트럭 내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하민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듯 작게 중얼거리며 다짐했다.
“과거로 갈 수만 있다면, 이 모든 파멸을 막을 수 있을 거야. 실패하면 내 종말을 앞당기는 꼴이 되겠지만… 어차피 내일 미사일이 내 머리위로 떨어질 수도 있는데 적어도 언제올지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 보다 내 마지막을 내가 선택하는 것이 후회로 남지는 않겠지... 적어도 5%의 가능성은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민의 머릿속엔 이제 곧 마주할 마이클 김 박사, 그리고 시공간 너머의 시대가 교차하며 떠오르고 있었다. 불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망적인 감각이 뒤섞인 이상한 기분이었다.

다음날 오전 11시, 그녀로 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마이클에게 하민씨 이야기를 했고 그가 하민씨를 만나고 싶어함."

마침내 마이클 김을 설득하기 위한 작전이 본격 시작될 터였다. 트럭 밖 하늘은 오후임에도 여전히 회색 먼지를 머금고 빛이 차단되어 어두웠다. 폐허와 고철들 속에서도, 차가운 흙탕물이 도로를 덮고, 깨진 건물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민은 잠시 차 창 너머를 지켜보다가, 결연한 눈빛으로 차 창문을 닫았다.

“곧, 새로운 시대를 열러 나는 떠난다.”

하민의 목소리는 의지를 머금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