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나의 공황장애 극복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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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황장애 극복기(회사 생활의 위기)
1년간 이어진 공황장애와의 긴 싸움은 나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을 남겼다. 0.1톤이라는 무거운 몸과, 날카로운 예민함 대신 찾아온 느긋하고 편안한 성격이 그것이었다. 치료에 쓰인 약물 덕분에 내 안의 불안은 점차 옅어졌고, 나는 이전처럼 밤새도록 일을 붙들고 고민하기보다 "내일이면 괜찮겠지"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회사 생활도 조금 더 여유로워졌고, 동료들과 파트너사와의 관계도 부드러워져서 술자리와 저녁 자리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렇게 평화를 누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새로운 종류의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장소를 탈출하고 싶거나 숨 막히는 불안은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이대로 편안히 지내다가는 경쟁에서 영영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다시금 예전..
2025.04.26 -
나의 공황장애 극복기(부작용)
가장 큰 부담이었던 미국 출장과 기자간담회를 무사히 끝내고 나니, 밀려오는 극심한 불안감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거친 폭풍우가 지나간 뒤 조용히 찾아온 고요함처럼 내 마음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뿐, 새로운 도전을 찾아 떠난 출장과 미디어 앞에 나서는 순간들을 거치면서 내게 남은 것은 오히려 더욱 늘어난 업무와 책임들이었다. 외부 사람들과의 미팅은 잦아졌고, 보스와의 식사 자리와 늦은 밤의 술 한잔까지도 업무의 연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약물치료를 통해 공황장애의 극심한 불안을 가까스로 극복하고, 회사에서도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했지만, 약물의 효과가 사라지는 순간이면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듯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퇴근 후 집에서 저녁..
2025.04.19 -
나의 공황 장애 극복기(위기 극복)
드디어 일주일간의 미국 출장길이 다가왔다. 공황장애 진단 후 첫 해외 출장이라는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전처럼 불안이 나를 압도하지 않았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 덕분인지 마음 한쪽에는 무거운 돌덩이를 누르고 있는 듯한 안도감이 있었다. 주머니 속에 넣은 긴급약은 마치 보이지 않는 방패처럼 든든했다. 하지만 마음을 놓기에는 아직 이른 듯했다. 출장지에서 술자리가 있을지 몰라 인터넷 공황장애 카페에서 정보를 뒤적였다. 카페에는 술과 커피를 멀리하라는 조언이 많았지만, 의사는 쿨하게 "적당히 마셔도 괜찮아요. 약만 잘 챙겨드세요."라고 말했다. 어쩌면 나는 술보다도 더 큰 걱정이 있었다. 보스에게 공황 증세를 들키면 내 커리어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상상이었고, 그와 함께 타야 하는 10시간의 비행이 바로..
2025.04.12 -
나의 공황장애 극복기(병원 방문)
청소년 ADHD 치료와 두뇌 트레이닝을 주로 다루는 병원이라는 소개를 인터넷에서 봤을 때, 성인도 상담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마치 나를 위한 작은 구명줄처럼 보였다. 오랜 망설임 끝에 찾아간 병원 입구에서 나는 무거운 문손잡이를 붙잡고 또다시 멈춰섰다. 문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 순간, 머릿속으로 다가오는 보스와의 미국 출장, 기자간담회에서 스피커로 서게 될 나 자신이 떠올랐고, 그 끔찍한 불안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리자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몸이 먼저 문을 밀어 열었다. 병원 내부는 아이들과 부모들로 붐볐다. 산만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고 있는 틱장애가 있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서 불안하고 어색한 모습으로 ..
2025.04.05 -
나의 공황장애 극복기 (증상의 발현)
나는 10년 넘게 공황장애와 함께 지내고 있다. 아직도 완치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억을 되돌려 나의 증상을 털어놓으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끄적여 본다. 2014년 중국 출장 후 귀국하는 비행기 안. 운 좋게 비상구 앞 좌석을 차지한 나와 여자 동료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비상상황 시의 주의사항을 친절히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어째서인지 그녀의 말은 점점 내 귀에서 울리는 묵시록 같은 예언으로 변했다. "만약 비상 시엔 비상구를 개방하여 다른 승객들의 탈출을 돕게 되실 거예요." 내가? 내가 왜? 순간 나는 영화에서나 보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했고, 어느새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숨이 가빠졌다. '이 비행기, 지금이라도 뛰어내려야..
202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