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장애 극복기(병원 방문)

청소년 ADHD 치료와 두뇌 트레이닝을 주로 다루는 병원이라는 소개를 인터넷에서 봤을 때, 성인도 상담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마치 나를 위한 작은 구명줄처럼 보였다. 오랜 망설임 끝에 찾아간 병원 입구에서 나는 무거운 문손잡이를 붙잡고 또다시 멈춰섰다. 문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 순간, 머릿속으로 다가오는 보스와의 미국 출장, 기자간담회에서 스피커로 서게 될 나 자신이 떠올랐고, 그 끔찍한 불안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리자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몸이 먼저 문을 밀어 열었다.

 

병원 내부는 아이들과 부모들로 붐볐다. 산만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고 있는 틱장애가 있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서 불안하고 어색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40대의 내 모습이 조금은 우스웠지만, 긴장과 공포의 무게는 여전히 어깨를 짓눌렀다.

 

3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의사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였다. 그는 안경 너머로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조용히 질문했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출장지 비행기에서의 공황상태, 회의실에서 긴장에 떨며 문만 바라보던 나 자신, 지하철조차 타기 힘들었던 경험까지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의사는 내 말을 조용히 듣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검사 비용이 40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잠시 망설임이 밀려왔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책을 읽고, 내 의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기에 흔쾌히 비용을 결제하고 검사를 예약했다.

 

일주일 후, 나는 반차를 내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진료실 옆 검사실에서 30대 후반의 여자 의사를 만났다. 그녀는 내게 IQ검사지를 건넸다. 나이 마흔에 새삼스러운 IQ검사라니, 쓴웃음이 나왔지만 묵묵히 검사지의 문제를 풀어갔다. 숫자 암기, 그림 연상, 가족관계와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질문과 빈칸 채우기, 마지막으로 집과 나무를 그리는 그림 검사까지 마친 뒤 그녀는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창문이 아주 작고 나무도 작게 그리셨네요. 불안감이나 위축된 정서를 나타내는 표현이에요." 그녀의 설명은 정곡을 찔렀고, 마침내 "공황장애 같습니다"라는 말에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랜 시간 나를 짓눌렀던 무언가가 한꺼번에 터진 것 같았다.

 

며칠 뒤 종합적인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처음 상담했던 남자 의사와 다시 마주 앉았다. 의사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검사 결과 IQ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높으시고, 특히 언어능력은 상위 2%에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공간과 도형 인지능력은 매우 낮아서 인지부조화가 발생할 수 있어요. 혹시 이공계 전공이신가요?"

 

그 질문에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이공계를 전공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 문제집 두 권씩 사서 반복적으로 풀며 패턴을 익혔다고 설명하자, 그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원래 문과적 소질이 뛰어난 분이셨어요. 문과로 갔으면 더 행복하셨을 겁니다."

 

이 말 한마디에 나는 또 한 번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40만원의 검사비가 전혀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의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최근의 부모님 사고, 자신을 증명하려는 치열한 직장 생활로 인해 공황장애가 나타난 겁니다. 치료는 약물과 인지치료가 있는데, 당장 효과를 보려면 약물을 추천합니다."

 

나는 곧 있을 미국 출장을 걱정하며 극심한 불안이 올 수 있다고 말했고, 의사는 특별히 강한 처방과 함께 비상시에 먹는 약도 추가로 처방했다.

 

약을 복용하자 일상이 조금씩 달라졌다. 불안의 파도가 밀려와도 전처럼 빠져들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깊고 긴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주말에는 오히려 무기력할 정도로 잠을 자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약물 치료는 불안감을 점차 희미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2주 후, 마침내 나는 더이상 도망칠 수 없는 미국 출장길에 오르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