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 장애 극복기(위기 극복)

2025. 4. 12. 07:44심리/나의 공황장애 극복기

드디어 일주일간의 미국 출장길이 다가왔다. 공황장애 진단 후 첫 해외 출장이라는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전처럼 불안이 나를 압도하지 않았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 덕분인지 마음 한쪽에는 무거운 돌덩이를 누르고 있는 듯한 안도감이 있었다. 주머니 속에 넣은 긴급약은 마치 보이지 않는 방패처럼 든든했다.

 

하지만 마음을 놓기에는 아직 이른 듯했다. 출장지에서 술자리가 있을지 몰라 인터넷 공황장애 카페에서 정보를 뒤적였다. 카페에는 술과 커피를 멀리하라는 조언이 많았지만, 의사는 쿨하게 "적당히 마셔도 괜찮아요. 약만 잘 챙겨드세요."라고 말했다. 어쩌면 나는 술보다도 더 큰 걱정이 있었다. 보스에게 공황 증세를 들키면 내 커리어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상상이었고, 그와 함께 타야 하는 10시간의 비행이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 좌석에 앉자 지난 출장 때의 끔찍한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 비상구 문은 또다시 나를 위협하듯 커져 보였다. 나는 서둘러 긴급약을 꺼내 삼켰다. 약을 먹은 뒤 잠시 후, 내 마음은 차분한 호수처럼 고요해졌고, 심지어 무기력할 정도로 생각이 멈췄다. 약효 때문인지 긴장이 풀리자 나는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비행기가 하늘 높이 떠 있었고, 놀랍게도 공포는 없었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옆자리에 앉은 보스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고, 영화도 여러 편 감상하며 무사히 LA에 도착했다. 현지 미팅 때마다 약을 먹고 심호흡을 하며 버텼고, 무사히 출장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운 좋게 보스와 자리가 떨어져 있어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한국 집에 도착해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긴 잠을 잤다. 스스로가 대견했다. 약 덕분인지, 경험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일상생활에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회의에서 의견도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사람들과의 소통도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약은 여전히 나를 깊은 잠으로 이끌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늘 약과 함께였고, 약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일상이 조금씩 낯설게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기자 간담회를 일주일 앞둔 스피칭 연습에서 다시 불안이 나를 덮쳤다. 연습 도중 숨이 막히고, 심장은 마구 뛰었다. 결국 다시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발표 공포는 사회불안과 비슷한 공황장애의 한 형태입니다. 인데놀이라는 약을 드릴 테니 발표 전에 드세요. 그리고 가장 화려한 넥타이와 비싼 양복을 입고 가세요. 자신이 돋보인다고 믿으면 자신감도 생깁니다."

 

나는 그의 말대로 가장 화려한 빨간색 넥타이를 샀고, 집에서 가장 좋은 양복을 꺼내 들었다. 인데놀은 마치 마법의 부적처럼 내 주머니에 늘 있었다. 나는 매일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외우고 녹음해 들으며 연습했다. 차 안에서도 집에서도, 아이들 앞에서도 수없이 연습했고 회사 팀원들을 관객 삼아 수차례 리허설을 했다.

 

마침내 기자 간담회 날이 다가왔다. 전날 밤 긴장으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발표 30분 전 긴장감은 극에 달했고, 탈출하고 싶은 충동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화장실을 오가며 수차례 마음을 다잡다가 인데놀을 삼키고 발표석으로 올라갔다.

 

처음 마이크 앞에 섰을 때 목이 타들어가는 듯했지만, 막상 말을 시작하자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연습했던 프레젠테이션의 모든 내용이 기계처럼 술술 흘러나왔다. 25분간의 발표가 끝나자 땀으로 흠뻑 젖은 셔츠가 차갑게 몸에 달라붙었다.

 

이후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이미 예상하고 연습한 질문들이라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답할 수 있었다. 발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그날도 깊은 잠에 빠졌다.

 

두 가지 커다란 관문을 무사히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공황장애는 생각보다 끈질겼고 새로운 부작용과 함께 다시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