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0. 08:01ㆍ사일런트 게이트웨이(창작 웹소설)
제2장. 잃어버린 미래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거리에서, 강하민은 피난민들의 흐느끼는 목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무너진 빌딩 잔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는 화려한 광고판과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도시였건만, 이제는 황량한 폐허만이 남아 있었다. 2030년, 단지 몇 해 전만 해도 이토록 끔찍한 상황이 펼쳐질 줄 아무도 몰랐다.
모든 것은 미.중간의 패권 전쟁으로 시작되어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본격화되었다. 미·중·일이 뒤엉켜 대규모 분쟁으로 비화된 전쟁은 삽시간에 전 세계를 3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고 핵폭탄을 포함한 고성능 미사일로 전쟁은 3차 세계대전으로 번졌고 국경을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이가 희생되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도 방사능 낙진과 기후 파괴로 인해 생존 자체가 막막해진 지 오래다.
몇 년 전까지 “기후 온난화”나 “환경 파괴”는 그저 뉴스에서나 떠돌던 추상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환경파괴는 더욱더 환경파괴를 부추겨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식량 부족, 이상기후 현상이 빚어낸 천재지변은 더욱더 극단화되어, 지구 생태계는 이제 자정 능력을 사실상 상실했다. 건물의 유리창 너머로는 먼지 가득한 바람이 불어닥치고, 분리수거는커녕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하민은 고개를 들어 잿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대항해시대’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져 살며, 커다란 배를 타고 미지의 바다를 탐험하고 무역하는 낭만을 꿈꿨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 시절 하민에게 세계는 아직 가능성과 모험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제 숲도, 바다도, 도시도 폐허가 되어버렸다.
“이대로라면 인류는 답이 없어.”
그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전쟁 폭격으로 손쓸새도 없이 하민은 하민의 부모님과 사랑하는 애인을 잃었고 많은 지인과 친구들을 잃거나 연락이 두절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잠시의 전쟁소강 상태에서 죽음을 기다리거나 피난소에 모여서 뉴스를 청취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도 잊은채 하루 하루 살아있어서 견디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민은 폐허 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머릿속은 그가 사랑한 사람들과 그가 사랑한 도시의 기억이 그를 짖눌렀다. 하지만 그는 점점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온통 ‘어떻게 하면 이 파멸을 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민은 3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AI 연구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다. 전쟁 초기에는 군사용 AI, 드론, 로봇병기 등이 대량으로 개발·배치되었지만, 어느 시점 이후 AI 시스템 자체가 셧다운되어버렸다. 공격 명령을 내리는 중앙 컴퓨터망이 파괴되었고, 통신 인프라가 마비된 탓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절정에 달하자, 전쟁용 AI는 스스로 작동을 멈춰버린 셈이다.
AI가 멈춘 뒤 몇 달간, 인류는 필사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이미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됐다. 하지만 하민은 쉼 없이 연구소를 뒤지고, ‘그린 에너지’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태양광, 풍력, 지열, 수소연료… 전세계가 내전을 벌이는 동안 사장되었던 기술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대로 가면 인류가 멸망할 테니, 어떻게든 과거로 돌아가서 이 비극을 막아야 해.” 하민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전쟁에 활용되던 AI 시스템이 비활성화되면서, 잠시 봉인되었던 정보들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하민은 군사 연구소 폐허에서 우연히 낡은 데이터 서버를 발견하고, 전력 공급을 임시로 복구해 AI 코어를 활성화했다. 연구소 안은 한때 로봇과 드론들이 들끓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부서진 드론 파편, 탄흔, 찢긴 지도로 가득한 공간이 삭막한 기운을 뿜어냈다.
AI 음성: “…… 접속 재개. 보안 등급 확인 중…….”
약간의 잡음 뒤에, 목소리 없는 데이터 문자열이 화면을 뒤덮었다. 하민은 몇 달간 독학한 프로그램 기술로 암호화된 디지털 서류를 하나씩 복원해냈다.
하민이 찾아낸 문서들 중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제목조차 희미하게 남은 '사일리언트게이트웨이?’ 같은 단어가 보였다. 파일을 열자, 지도 한 장이 화면에 나타났다. 처음엔 위성 사진이나 고지도 같았다.
“이건 뭐지? 근데… 왜 이 위치가 표시되어 있지?”
지도 위에는 굉장히 정교하게 그려진 시간축과 좌표 비슷한 마크들이 있었다. 방위각이라기엔 수상한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시공간 전이’ ‘Temporal Shift’ 같은 미심쩍은 주석이 달려 있었다.
“설마… 이게. 정말로…?”
하민은 전쟁 전 군사 과학 프로젝트들이 “시공간 연구”까지 진행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단지 망상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말들이 눈앞의 자료로 구현된 셈이다.
“우연히… 아니, 운명처럼….”
하민은 믿기 힘들었지만, 만약 이 지도가 가리키는 장소가 실제로 과거로 타임슬립할 수 있는 ‘게이트’ 역할을 한다면—그것이야말로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과거로 돌아가면, 적어도 지구를 이렇게 황폐하게 만들진 않을 수 있어.”
하민은 중얼거렸다. 독재자들, 전쟁을 부추긴 권력자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새로운 세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만 태평양 건너 어딘가에서 핵미사일이 날아와 도시가 잿더미가 되는 광경을 다시는 보지 않을 수 있을 터였다.
“내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호흡기를 끼고 살던 사람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그는 슬쩍 연구소 유리창 너머를 보았다. 누렇게 말라버린 황무지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방독면을 써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환경 재앙이 가속될 건 불 보듯 뻔했다.
실낱같은 희망이 담긴 이 ‘지도’를 손에 쥔 하민의 눈빛에는 처음으로 강렬한 의지가 다시 되살아나 있었다. 이 비극적인 미래를 뒤집기 위해선, 오직 과거로 건너가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그린에너지 기술과 세계 협력 체계를 미리 구축해 지구 파괴를 막아야 한다.
다만, 그 길이 진짜인지, 게이트가 정상 작동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하민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하나, 손 놓고 머지않아 종말에 가까운 대기근과 폭주하는 군소 전쟁을 지켜보며 서서히 삶이 무너지는 걸 기다릴 것.
둘, 과거로 가서 일말의 희망을 만들어볼 것.
“난 선택할 수밖에 없어. 망가진 지구를 되살릴 마지막 기회가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문을 열어야 해.”
하민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눈앞의 지도에 찍힌 낯선 좌표를 똑똑히 기억했다. 타임슬립이라는 믿을 수 없는 가능성이, 그를 새로운 모험으로 이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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