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좌측통행 사무라이 칼집 유래설 검증

2025. 3. 14. 07:14이런저런 탐구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일본이 ‘좌측통행(차량의 핸들이 오른쪽, 도로는 왼쪽 차선 주행, 보행자는 왼쪽 보도)’을 고수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때, 흔히 “사무라이가 칼집이 부딪혀 싸움을 일으키지 않도록 왼쪽 통행이 정착됐다”라는 이야기가 자주 인용됩니다. 실제로 메이지 시대(1868~1912) 이후 일본은 영국 철도·도로 시스템을 대거 도입했고, 이로 인해 근대 도로교통 법규에서 ‘좌측통행’을 공식화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라이 칼집’ 이야기는 과연 어느 정도 근거가 있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대의 좌측통행이 굳어졌는지 주요 관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흔히 알려진 ‘사무라이 칼집’ 유래설

  1. 사무라이 칼을 왼쪽에 찬 문화
    • 전통적으로 사무라이는 오른손잡이가 많았고, 칼을 뽑기 쉽게 칼집을 왼쪽 허리에 찼습니다.
    • 길을 지나다가 서로 칼집이 부딪히면,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모욕하거나 결투를 걸었다는 시비가 붙을 수 있었습니다.
    • 따라서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지나가도록(즉 좌측통행) 움직이면, 칼집이 중앙에서 서로 닿지 않을 것이므로 불필요한 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2. 에도 시대(1603~1867) 행행(行行)의 관습
    • 에도(지금의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사람·가마·말 등이 많이 지나다니다 보니, 일정한 ‘지나가는 쪽’을 미리 정해야 혼란이 줄어든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 실제로 기록에 따르면 에도 시대 말기에 대도시에서는 사람과 말이 어느 쪽으로 비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관습적인 규칙이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 다만 “사무라이 칼집 문제 때문에 공식적으로 좌측통행을 정했다”는 뚜렷한 막부의 법령이나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즉, ‘사무라이 설’은 구전·추측 성격이 강한 이야기로 보는 학자도 많습니다.
  3. 문화적 뉘앙스와 상징성
    • 일본에서 “사무라이의 칼”은 문화적·상징적 의미가 강해, 여러 관습이나 에피소드가 “사무라이 문화” 때문이었다고 전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 좌측통행도 이 맥락에서 “옛 사무라이 시절부터 몸에 밴 관습”으로 이해하면 이야기 전개가 쉽고 흥미로워 구전되기 좋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칼집 부딪힘 방지’가 좌측통행이라는 습관을 낳았다는 스토리는 일종의 ‘유래담’(일반적 설화)에 가까우며, 뚜렷한 역사적 문헌 근거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에도 시대 대도시에서 이미 ‘사람은 좌측, 마차·말은 우측’ 등 다양한 형태의 비공식 규칙이 존재했다는 기록은 있어, 어느 정도 길에서의 “비켜가기” 관습은 발전해 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2. 근대 일본이 ‘좌측통행’을 공식화한 결정적 이유: 영국식 도로·철도 도입

  1. 메이지 시대 서구화 정책
    • 메이지 유신(1868) 이후, 일본 정부는 영국·프랑스 등 서구 열강의 과학·기술 체계를 적극 수용했습니다.
    • 그중 철도와 해군은 주로 영국으로부터 기술과 체계를 들여오는데, 특히 철도 건설(1872년 개통된 도카이도 본선 등) 과정에서 영국의 ‘좌측통행’ 방식이 그대로 도입되었습니다.
    • 철도가 좌측통행으로 달리니, 이와 연계된 도로·교통 시스템도 점차 좌측통행을 전제로 정비되었습니다.
  2. 공식 법제화 과정
    • 1900년대 초반 도로 교통이 증가하자, 정부 차원에서 차량 통행 방향을 명문화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 1924년 ‘도로취체규칙’을 통해 자동차가 ‘좌측 차선으로 달리는 것’을 의무화했고, 이후 1949년 차도·보도 분리 규정 등이 정비되면서 ‘자동차는 왼쪽, 보행자는 오른쪽 보도’라는 원칙이 확립됐습니다(보행자에 대해서는 시기에 따라 지침이 다소 달라지기도 했음).
    • 2차 대전 종전 후 미국이 일본을 점령했을 때도, 미국식 우측통행이 아니라 기존 일본의 좌측통행을 상당수 지역에서 유지했습니다. (단, 오키나와처럼 미군정 영향으로 한때 우측통행이 적용된 지역도 있었으나 1978년에 일본 본토 규칙과 통일하였음.)
  3. 영국 해군(해사)·도로법 제도
    •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을 모델로 삼았고, 군용 차량이나 군사 교범 등도 영국식을 채택했습니다.
    • 군부대 주변이나 군사도로를 통해 좌측통행이 더욱 확산되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결국, ‘좌측통행’이 일본 현대 교통의 공식 규범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영국식 철도·해군 시스템 도입이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3. 보행자의 좌측통행: 현대 규정과 실제 문화

  1. 일본 도로교통법의 기본 원칙
    • 일본은 차량이 좌측을 달리는 국가이므로, 보행자는 도로 상황에 따라 반대편(차도로부터 안전한 쪽)으로 걷도록 장려됩니다.
    • 다만 인도가 넉넉하거나 보행 전용 도로라면 어느 쪽으로 걸어도 문제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 시내에서는 보행자가 굳이 한쪽에만 몰리기보다, 상황과 관습에 따라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 전철역·승강기 등에서의 ‘줄 서기’
    • 일본 일부 지역(도쿄 등)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 왼쪽에 서고 오른쪽을 비워두는 관행이 있는 반면(간사이 지역에서는 반대인 경우도 있음), 이런 생활 속 습관도 결국 ‘좌측통행’의 영향과 지역적 변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입니다.
  3. 사무라이 전통의 상징성
    • 현대 일본인들이 “보행은 왼쪽이 당연”하다고 인식하는 데에는, “과거 사무라이 시절부터 왼쪽을 걷는 관습이 있었다”는 문화적·역사적 설명이 ‘스토리텔링’으로 작용합니다.
    • 실제 일상에서 “칼집을 부딪힐까 봐 조심한다” 같은 구체적 이유는 이제 의미가 없지만, 집단 정체성 혹은 일종의 전통 서사로서 남아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4. 결론: 칼집 설화 + 근대화 영향 = 오늘날의 ‘좌측통행’

  • 사무라이 칼집 유래설:
    • 에도 시대 거리에서 칼이 부딪히면 싸움이 날 수 있으니, 서로 왼쪽으로 비켜 지나다녔다는 구전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
    • 역사적으로 완벽히 입증된 공식 기록은 부족하나, 사무라이 문화의 일면과 일부 도시 관습(비켜 가는 규칙)에서 기원한 측면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수 있음.
  • 근대 교통제도의 결정적 요인: 영국식 시스템 도입
    • 19세기 말부터 일본 정부가 철도·도로·해군 등 영국식 모델을 본격 채택하면서, 좌측통행을 제도적·법적으로 굳히게 됨.
    • 궁극적으로는 이 ‘공식화 과정’이 현대 일본의 교통체계(차량·보행자 포함)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침.

결국, “좌측통행은 사무라이 칼집 때문에 비롯됐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전승된 문화해석이 뒤섞인 일종의 구전 설화지만, 에도 시대의 도시 관습이나 사무라이 문화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현대적인 의미에서 국가 차원의 좌측통행 제도가 확립된 가장 큰 계기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영국식 교통·군사 시스템 도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무라이들의 좌측통행>